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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들어온 심리학 - prologue 본문

bible n science [성경과 과학]

교회 안에 들어온 심리학 - prologue

BibleMotivation 2023. 10. 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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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과연 과학의 범주에 속할까? 아니면, 개인적인 믿음의 영역일까? 그리고 심리학과 성경은 그 목적과 결과가 같을까?


시작하는 말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선과 악의 전쟁은 소리 없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진리의 한 조각을 세상에 드러내실 때마다, 사탄도 역시 그 진리를 가리기 위한 이론과 사상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그러한 보이지 않지만 명백하게 존재하는 선과 악의 영적인 전쟁 중에 사탄이 세상 속에 뿌려놓은 수많은 사상들; 즉, 철학과 사조, 가치관과 세계관 및 문화와 양식들이 언제부터인지 교회 속에 서서히 스며들어와서, 이제는 성경말씀의 영향력과 성경의 진리의 능력이 어떻게 성도들의 삶 속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마저 왜곡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 중에서 몇몇은 이미 거의 확고한 하나의 신학적이며 목회적이고 신앙적인 방법론으로 굳어져가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심리학」이다.

 


무엇이든지 명확한 기준점과 비교해야 함

◼︎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원칙과 기준점을 지키는 것이다

본 블로그는 종교개혁의 5대 원칙을 따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별히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라는 원칙에 기초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나님도 하나(성부=성자=성령)이시며, 성경도 하나이고, 진리도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 이 세상에는 성경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자, 자신들의 경전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에 속한 종파 및 기독교를 흉내내고 있는 종교가 약 2000여 개나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이 성경의 올바른 기준점을 너무나 많이 왜곡시키고 흐트려뜨렸기 때문에 신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안에는 이미 인간의 유전을 성경의 진리보다도 더 믿고 따르는 여러 종파들과 무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교회의 권위로 성경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바꾸어 버린 기독교의 종파들이 매우 많이 존재한다.

 

이 블로그를 통하여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세상의 어떤 성경해석이나 설교, 또는 기독교의 교리라도 모든 판단의 기준은 오직 성경책이며, 성경책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기준도 역시 성경책이라는 사실이다. 구약성경의 해설서는 다름 아닌 신약성경이며, 신약성경의 해설서도 역시 구약성경인 것이다. (*그러나, 신천지를 비롯한 일부 기독교를 흉내만 낸 종교들은 성경의 진리의 말씀을 왜곡시켜서 한 인간을 메시야로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준으로 성경책을 반으로 접으면, 정확하게 접힌다는 사실만 봐도 성경책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철저하게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지구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성경의 예언과 구약, 신약에 기록된 장소, 국가, 사건들을 지구의 역사 및 연대와 비교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예언대로 세상의 역사가 흘러간다는 사실을 믿고싶지 않은 사람들은 믿지 않거나, 또는 믿기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래의 도표들은 첫째 아담의 실패를 그대로 다시 성공으로 이끄신 둘째 아담 예수님의 회복의 역사가 성경책 전체의 주제인 것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주제와 목적과 목표,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 또한 구약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표상들; 즉, 구약의 인물, 사건, 제도가 신약성경에 와서는 그 모든 것의 원형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로 완성된 것을 각각 보여준다. 

 


◼︎ 베뢰아 사람들의 교훈

성경에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데살로니가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사도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도망쳐서 도착한 곳이 바로 "베뢰아"인데,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했을 때, 베뢰아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사도행전 17장 10~11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위의 성경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거나 들을 때, 진리를 받아들이는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에서 배울 수 있는 “말씀을 받아들일 때의 두 가지의 핵심적인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① 첫째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이며,

② 둘째는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칭찬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베뢰아 사람들은 오히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그들이 받은 말씀이 "그러한가"했으며, 그 말씀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연구했다. 

 

특히, 이 성경절에서 사용된 "상고하다"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ἀνακρίνω(아나크리노: 350)"인데, 이 단어는 "~안으로, ~위에, 각각, 차례대로"를 의미하는 헬라어 "ἀνά(아나: 303)"와 "나누다, 판단하다, 결정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κρίνω(크리노: 2919)"의 합성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4회 사용되었으며, 단어의 의미는 "자세히 조사하다", "심문하다", "결정하다", "묻다", "구별하다", "판단하다" 등으로써, 법정에서 피고의 죄를 판단하거나 죄의 여부를 조사하며 심문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ἀνακρίνω(아나크리노: 350)"는 신약성경 속에서는 "심문하다(눅23:14; 행12:19; 행24:8 등)", "질문하다(행4:9; 고전10:25,27)", "상고하다(행17:11)", "분별하다(고전2:14)", "판단하다(고전2:15; 고전4:3; 고전14:24)", "비판하다(고전9:3)"등의 의미로 각각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베뢰아 사람들은 유명한 사도였던 바울이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성경적 해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며, 오직 성경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스스로 성경말씀과 비교해서 검증하고 확증한 후에야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특히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본받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교훈인 것이다.


본 블로그는 이러한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를 본받기를 원하며, 계속하여 오직 성경말씀만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을 것을 다시 확언하는 바이다. 이와 동시에, 본 블로그를 방문하여 성경 연구 글들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역시 본 블로그의 글을 읽고 스스로 성경책과 비교해 보고 판단하시기를 거듭 강조한다.

 

Sola Scriptura!

 

*본 「교회 안에 들어온 심리치료」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의 칼럼을 참고하고 인용하였음을 먼저 밝힙니다.

 


교회 속에 들어온 심리학과 심리치료

위에서 살펴본 베뢰아 사람들의 성경연구의 원칙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모든 부분에 모두 적용된다.

 

그리스도인의 하루의 삶 속에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써 일하며 먹고 살 때에도, 세상이 제시하는 어떤 것들이 성경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말고 성경의 법을 명확하게 따라서 행동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실천해야 하는 태도인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철학과 사조, 가치관과 세계관, 문화와 양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심리학이나 심리치료도 역시 성경의 원칙에 비교하여 판단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요즘, 현대인에게 심리학은 세상 그 어떤 이론이나 사상보다 친숙하다.

 

사람들은 "과학"이나 "학문"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이 경험하는 모든 문제들이 설명되기를 기대한다. 심지어는 전혀 경험하지 못하였거나 잘 알지 못하는 "죽음"이나 "우주", 또는 "생명탄생"과 같은 신비한 주제에 대하여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어지기를 기대한다.(*그러나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시며, 과학의 창시자이심을 잊고 있다)

 

그리고 "심리학"과 "심리치료"는 이러한 사람들의 희망에 발맞추어 시대를 거듭하여 발전하여 왔으며, 이제는 신학과 신앙, 및 믿음의 영역에까지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상과 주제가 성경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성도의 믿음의 성장과 성도가 예수님을 닮은 품성으로 변화하도록 돕는다면 좋지만, 만약 돕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따르거나 학습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러한 사상과 방법론을 교회 안으로 들여온 장본인은 바로 "사탄"인 것이 확인되며, 또한 그러한 사상에 빠진 사람은 사탄의 생각과 의도를 받아들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인간에게 주신 구원을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가인의 제사를 반복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의 구원에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잘못된 믿음과 신앙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지금 세상의 모든 대중매체; 영화, 광고, 음악, 드라마, 예술작품, 학문, 과학, 특정 종교들 등은 모두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하게 인본주의, 자유로운 성 정체성, 자존감, 자기사랑, 긍정적인 생각과 말, 등의 키워드가 인터넷을 통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매우 다방면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키워드들은 바로 심리학적 사고와 표현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매우 쉽게 "치유 목회", "내적 치유"라는 말을 교회 안에서도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심리학에 뿌리를 깊게 두고 있으며, 이러한 심리학의 가치와 수단 및 방법에 기초한 설교와 상담을 교회 안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심리학의 도움으로 개인의 문제와 사람 간의 갈등을 잘 해결했다는 간증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요즘의 교회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바로, 베뢰아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모본에 따라 "심리학"과 "심리치료"가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볼 때, 옳은 방법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심리학이 아무리 도움이 되어도,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거짓된 것임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버려야 한다. 반면에, 심리학이 사용하는 도구와 방법과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과 진리에 부합하다면 심리학과 심리치료를 교회 안에서 계속 사용하고 널리 보급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온 우주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한 가치와 기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주장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엉뚱한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시며, 이 세상의 역사는 성경의 예언에 따라 정확하게 이루어져 왔고, 또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분명히 다시 오신다.)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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