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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가는 길: 바른 성경연구

12제자 시리즈: 의심이 진심으로 바뀐 디두모 도마 본문

bible n people [성경의 인물]

12제자 시리즈: 의심이 진심으로 바뀐 디두모 도마

BibleMotivation 2020. 7. 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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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본문: 요한복음 20장 24~29절

 

A. 시작하는 말 

-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택하셨을 때, 지식인들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강자가 아닌 약자들을 선택하셨다. 그래서, 성경에서 기록하는 12제자들의 말들과 행동들은 모두 지극히 오늘날의 우리도 역시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오늘 언급하고자 하는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요11:16; Thomaswho was called Didymus)는 4복음서에서 12 제자들의 이름을 거론할 때를제외하면, 오직 요한복음에만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제자 중에 막내였던 사도요한이 도마와 관계가 가장 좋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 중에서 오직 요한만이 도마라는 인물을 가까이에서 세심하게 관찰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수님의 옆구리 못자국에 손을 넣어보는 도마(구글이미지)


 

B. 디두모 도마의 이름과 배경 

- 요한복음 21장 2절에서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라고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도마의 이름은 적어도 "디두모"와 "도마" 두 개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도마"라는 이름은 아람어(Aramaic:사복음서의 일부분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이며, "디두모"는 헬라어(Greek)이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모두 똑같이 "쌍둥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그의 이름이 왜 쌍둥이였는지는 알길이 없으며, 역사적으로 고증하기도 어렵지만, 많은 성경학자들은 그가 쌍둥이로 태어났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도마의 쌍둥이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으며,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도마의 성격과 행동으로 보았을 때, 그가 어릴 때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심리적인 상태와 경험을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보통, 쌍둥이들에게는 심리학적으로 서로 시기하고 다툴 수 있는 가능성이 일반적인 아이보다 많다고 하는데, 쌍둥이 형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같은 것들이 아마도 도마로 하여금 의심을 많이하게 하는 성격을 가지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그의 성장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할 수 밖에 없다.

 


 

C. 성경이 기록하는 도마의 모습과 교훈 

- 도마를 둘러싼 사건을 성경은 크게 세 가지로 보여 준다. 첫째는 요한복음 11장 16절 전후, 둘째는 요한복음 14장 5절 전후, 셋째는 요한복음 20장 24절 이하이다.

 

*첫째 장면 - 나사로의 죽음의 장면에서... (요11:14~16)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 본문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병들어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시기 전의 일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는데,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장면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질병과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진리를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절)”고 말씀하신 것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 그러나 도마의 발언은, 그러한 예수님의 목적을 이해한다면, 전혀 필요없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데, 우리는 이 말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 첫째, 만일, 도마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의 위험을 이해하고 나선 것이라면 굉장히 용기있는 사람이다.

- 둘째, 예수님이 사랑했던 나사로, 제자들도 잘 알고 친했던 나사로의 죽음이 임박했음에도 계속 지체했던 스승에 대해 빈정대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다.

 

학자들은 후자일 가능성이 더 많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도 도마는 항상 어둡고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장면 - 재림의 약속을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요14:1~6)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예수님께서 11장에서 나사로를 깨우러 간다고 했을 때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을 때 도 역시 도마는 전과 같이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지를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여기에서 우리는 도마에 대해서 오히려 하나의 희망을 걸 수 있는데, 그것은 도마가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고 즉시 말 대답, 혹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반문하면서 무엇인가를 계속 찾고 있었다.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자기의 신앙에 대한 문제나, 삶과 죽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 등...에 대하여 도마는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붙들고 추구하고 있다.

 

▶ 어떤 신학자는 도마의 됨됨이를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는 회의에 찬 사람이지만, 절망적 회의론자는 아니다. 그는 차라리 구도적 회의론자에 가깝다. 그는 진리를 찾고 있는 회의론자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그는 이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주님을 놓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주님 앞에 질문을 늘어놓고 있는 신앙적 회의론자다.”

 

비록 그의 말의 바탕에는 불평과, 자조적인 언사가 흐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마는 적어도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점을 우리는 이해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셋째 장면 - 십자가 및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에서... (요20:19~2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 본문의 말씀은 매우 명확하게 도마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앞의 두 장면(11장/14장)에는 회의적이며, 때로는 비꼬는 듯한 언사를 통해서 그의 내면의 의심과 진리를 추구하는 그 깊은 갈망과 목마름을 보았다면, 요한복음 20장의 도마는 극명하게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두 모습은 매우 극과 극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 도마는 분명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보다 실증적 경험이 필요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계속하여 증거가 있어야 믿겠다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똑똑히 본 바로 그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자신의 앞에 실물로서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다. “... 그렇다면, 네 손을 넣어 보고 만져 보아라.”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을 자기 자신의 영원한 구주로서 받아들였다. 더 이상의 의심은 없었다. 도마는 그 순간 바로 엎드러지면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라고 자신의 진심을 담아서 고백한다.

 

디두모 도마는 한편으로는 싸늘한 이성적 회의주의자같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뜨겁고 진지한 열성을 가지고, 진리에 대해서 추구하고 알고 싶어했던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옆구리의 못자국에 손을 넣어보는 도마-2(구글이미지)


 

D. 결론 및 생각해 볼 문제 

- 어쩌면,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의심과 회의의 문제가 아닐까?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 회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속 질문하여야 한다.

- “주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그 길을 우리가 어떻게 갈 수가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는 도마의 질문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대답해 주셨다. 도마의 질문이 없었더라면, 이 위대한 대답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질문하고 있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비판하는 것도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회의적 마음을 가지는 것'과 '불신앙'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예수님은 도마의 질문을 단 한번도 꾸짖지 않으셨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와 만나 주실 것임을 확신한다.

 

# 회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제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한다.

-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찾아오셔서 부활하신 주님의 정체를 나타내셨을 때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다. 주님이 역사하실 때 당신은 그 현장에 있었는가? 종교 암흑기를 견뎌낸 경건한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모임에 거의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역사를 행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당연히 있어야 할 자신의 자리를 떠나, 이탈된 자리에 있었다. 그러다가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요20:26)"에야 도마도 함께 있었다. 제자들이 모두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고, 도마는 의심을 없앨 수 있었다.

 

- 혹시, 신앙에 대한 의심과 회의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빠지지 않아야 한다. 어느날, 어느 사건을 통해, 어쩌다가, 혹은 부모님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지라도, 우리의 신앙은 "믿음에서 믿음으로(롬1:17)"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성장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진정한 구세주, 창조주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 시작된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실망한다. 목사와 장로들, 혹은 같은 교인들의 불화와 잘못된 판단에 상처받고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 속에서 어떠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일들이라도 극복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바라볼 분은 오직 예수님이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처럼..." 이지, "저 목사님처럼, 저 장로님처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장 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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