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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인가? - Part 3(사투르누스 축제와 크리스마스의 탄생,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온 이교사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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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인가? - Part 3(사투르누스 축제와 크리스마스의 탄생,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온 이교사상)

BibleMotivation 2022. 12. 1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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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이전 글에서는 수메르의 일곱도시의 행신신으로부터 그리스를 거쳐 로마의 신화로 이어지는 이교신의 역사와 그 신들의 이름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알아보았다. 또한, 그 신들의 이름을 차용하여 지금 일주일의 각 요일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그리고, 수메르의 일곱  도시들 중에서 "라가쉬"의 수호신으로 정해진 토성신 "닌-이브"는 일주일 중에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을 지배한다고 믿어졌고, 그리스 시대에 와서는 "크로노스", 로마시대에 와서는 "세툰"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며, 이 토성신 "닌-이브"를 위한 축제일이 일년 중에 마지막 달 중으로 제정되었다는 것도 역시 연구를 통하여 확인하였다.

 

오늘은 이 농업의 신이자, 토성신인 "닌-이브"; 즉, 크로노스, 또는 세툰의 축제일이었던 "사투르누스 축제"와 이 축제가 어떻게 기독교의 개념과 합쳐져서 나중에는 크리스마스가 되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땅과 농업의 신 세툰을 위한 축제의 날, 그리고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의 축제의 날

 

토성신 "세툰"은 로마에서는 "땅과 농업의 신"이었으며, 매년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가 축제일이었다. "사투르누스"라고 이름붙여진 이 축제는 토성신 새툰을 위한 숭배와 축제의 날이었으며,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축제일이자 신성한 날로써 지켜졌다.

 

각종 종교행사와 토성신을 위한 제사가 이어졌고, 고대 로마의 가장 힘 센 검투사들의 시체가 제사의 제물로 드려지기도 하였다.

원래의 축제일은 12월 17일 단 하루였지만, 나중에는 23일까지 일주일 동안을 축제일로 지켰다.

 

또한, "세툰"은 로마제국 이전에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흔들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 제국에서는 "크로노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신이었으며, 시간을 지배하는 신이기도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일년 중에 가장 시간이 짧아지는 “동지”는 빛이 밤에 의하여 정복당하는 날이라고 믿었으며, 동지 바로 다음날부터는 다시 부활한 낮이 점점 세력을 키워서 새로운 해가 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죽음과 부활’의 이미지를 가진 “동지”를 토성신 새툰(로마)의 수확과 크로노스(그리스)의 시간의 신이라는 이미지를 합쳐서, 빛이 되는 신 제우스를 먹어치웠다가 다시 빛을 토해내는 이미지로 토성신을 그려내게 되었다.

 

그리고 토성신 새툰은 풍요와 농업의 신이자, 시간의 신이지만, 또한 자유의 신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축제의 날에는 종들이 자신의 주인이 베푸는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 종일 자유를 누렸고, 주인들은 종들에게 음식과 놀이를 베풀었다.

 

정리하자면, 토성신을 기념하는 날인 이 "사투르누스 축제"는 '땅과 농업', 그리고 '시간'의 신을 기리는 축제임과 동시에, '자유함'을 기념하고 누릴 수 있는 그런 축제였던 것이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걸출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그런 와중에 서기 272년 경, 로마의 황실에서는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로마"를 황제로 알려진 "콘스탄티누스 1세(콘스탄티누스 대제)"였다.

 

*참조: 새로운 로마’를 세운 황제 (인물세계사, 함규진)

세계사에 따르면, 당시 로마의 상황은 약 3백 년 전 로마 제국이 세워질 때의 로마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제국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5현제 시대’를 지나 약 50년 간 18명의 황제가 쿠데타와 암살을 반복하며 잇달아 나타나고 사라져가는 ‘군인황제 시대’의 혼란기가 왔던 시기였다. 이처럼 정치가 혼란스러웠을 뿐 아니라, 내적으로 경제력과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외적으로는 게르만족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 내우외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3세기에 들어서며 한 때 진정되었던 이런 로마 내외적 분쟁들은 다시 시작되었고, 로마는 4명의 다른 황제가 각각 통치하는 나라로 조각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서기 312년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의 승리 이후에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11년 후인 서기 323년에 동로마도 역시 격파함으로써 명실상부 통일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서기 324년에 로마 전역을 평정한 콘스탄티누스는 이후 13년 동안 “정복자이며 최고의 아우구스투스”로 불리며, 로마 제국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기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제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주게 된 이후, 수백 년 동안 탄압받아온 기독교인들이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계획적이며, 세밀하게 정치와 사회를 조직적으로 지배해 나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콘스탄티누스는 그동안 국가가 몰수했던 교회의 재산을 돌려주었으며, 사비를 털어서 교회를 신축하는 데 보탰다. 또한 그는 멜키아데스 교황에게 자기 소유의 라테란 궁전을 기증했으며 그것은 이후 천 년 동안 ‘교황청’의 기능을 맡았다.

 

콘스탄티누스는 계속해서 성직자들의 조언에 따라 노예의 사적 처벌 금지법(319년), 죄수 학대 금지법(320년)을 제정했으며, 서기 321년에는 처음으로 일요일을 휴일로 삼았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기독교와 전통적인 태양신 숭배(행성신 숭배)의 절충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태양신 숭배의 날이었던 첫째 날 일요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로 정하게 된다.(*참고로 당시의 모든 기독교 인들은 일곱째 날인 토요일이 예배일이었다)

그리고 325년에는 '니케아 공의회'를 개최하여 당시 기독교 세계의 최대 논쟁이었던 ‘아리우스파논쟁’, 즉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놓고 벌어진 논쟁에서 신성론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처럼 그가 기독교를 부흥시킨 까닭은 자신의 끊임없는 행운이 신의 가호라고 믿었기 때문일 수도, 로마를 통합시키는 데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전통 종교보다 기독교가 적합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교황을 비롯한 기독교 사제들에게 “신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칭송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황제권을 튼튼히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후 기독교 군주들이 왕권의 근거로 들게 되는 ‘왕권신수설’의 원조는 콘스탄티누스였던 셈이다.

*참조: 새로운 로마’를 세운 황제 (인물세계사, 함규진)

 

 


 

"수확 + 동지 + 자유"의 의미와 "기독교적 개념"의 융합, 그리고 성탄절

 

세계 역사가 기록한 대로, 로마의 걸출한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당시에 로마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던 "그리스도교회(열두 사도들을 통한 초대교회)"와 로마의 전통적 "태양신(행성신) 숭배사상"을 결합하여 로마교회를 탄생시켰는데, 이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였다는 사실은, 위에서 확인했듯이, 기록된 역사를 통하여 읽어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독교인들까지 자신의 통제아래에 두고 그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하여, 전통적인 로마의 이교사상인 행성신들 및 태양신 숭배와 순수 기독교를 통합하였으며, 이에 따라 이런 태양신 숭배사상과 결합하여 참된 성경의 진리와 하나님을 배신한 배도한 교회인 "로마 가톨릭"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들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와 종교의 통합의 일환으로써, 앞에서 설명한 동지 때의 빛이 부활하는 개념과 풍요로운 수확의 개념, 그리고 자유의 개념을 모두 받아들여서 통합하게 되었고, 차후에는 그런 모든 개념들을 포괄적으로 하나로 묶은 날이 바로 12월 25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위에서 언급한 행성신 숭배 사상기독교의 진리들; 즉,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자유의 날인 출애굽 사건과 왕 중의 왕이시며 빛되시고 부활이신 예수님의 탄생과 합치게 되면서, 12월 25일은 이교신앙의 축제일에서 예수님의 탄생일로 둔갑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온 세계가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 12월 25일은 결국, 사탄이 역사적으로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이교사상과 기독교 진리를 혼합시킨, 일명 성경 진리의 본질을 흐리는 "사탄의 작품"인 것이다.

 


산타가 쓰고 있는 프리기아 모자

 

크리스마스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상의 인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산타 클로스"이다.

그리고 이 산타 클로스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그가 쓰고 있는 모자이다.

 

산타는 언제나 방울이 달린 고깔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 모자는 자유를 상징하는 "프리기아 모자"라고 불리는 모자이며, 근대사의 미국이나 남미 또는 유럽의 동전, 그림, 국가의 자유이념을 의미하는 상징물에도 역시 이 모자가 꽤 자주 등장한다.

이 ‘프리기아 모자’는 자유를 상징하며, 토성을 중심으로 지구에서 바라본 화성과 금성의 일직선을 이룬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으며이집트 파라오의 백관과 페르시아 미스라 왕관과 같은 모양 및 같은 의미인 행성신 숭배사상을 직접적으로 기념하여 만들어진 모자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자를 가상의 토성신을 대신하여 현대의 가상의 인물인 산타클로스가 쓰는 모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이교사상들

 

사실, 현재 기독교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적 절기들; 예를 들면, "사순절"로 시작하여, "고난절",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로 이어지는 현대 기독교 절기들은 모두 위에서 설명한 것과 비슷하게 행성신 및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교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러한 이교신앙과 기독교의 진리가 혼합되어 생기게 된 것들이다.

 

성경은 단 한번도 "사순절, 고난절, 부활절" 등을 만들거나 지키고, 기념하라고 기록한 적이 없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예식들"성찬예식(누가복음 22장)", "세족예식(요한복음 13장)", 및 "침례예식(베드로전서 3장 21절)" 뿐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말한다.

'그런 절기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냥 그 속에 담겨진 성경적인 의미만 우리가 기억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르겠는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이교사상이 기초가 된 그런 엉터리 절기들을 기념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늘 한결같이 하나의 진리만을 말씀하시며, 선택은 여러분과 나의 몫이다.

 

 

 

 

To be Continued...

 

[다음 화: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인가? - Final Part(성경적인 예수님의 탄생일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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