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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⑥ - 가룟 유다의 믿음 본문

bible study [핵심 진리]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⑥ - 가룟 유다의 믿음

BibleMotivation 2024. 1. 1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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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유다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하였고, 그 결과로 예수님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가룟유다의 잘못된 믿음의 결과

바로 앞의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했지만, 시몬의 잔치 자리에서의 막달라 마리아의 행동에 대하여 그 잔치 자리에는 여러 다른 시선들이 있었으며, 특히 당시 그 옆에 있었던 집주인 시몬과 예수님의 전도활동의 모든 금전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던 가룟 유다는 각각 아래와 같이 생각했다.

 

[누가복음 7장 39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요한복음 12장 4~6절]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리고, 그들이 위와 같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때문이었는데, 이것은 바로 당시의 유대의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구원관과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의 예언을 그들 마음대로 해석한 결과였다.(*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를 원했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및 사두개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 앞에 던져 놓은 시험거리와 덫을 예수님께서 하늘의 지혜로 빠져나가실 때마다, 그들에게 계속 보여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진리; 즉, 하나님의 율법과 그 율법을 기초로 통치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병자를 고치시는 기적과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계속 보여주셨던 것이다.

◼︎ 가룟유다의 이기적인 믿음의 결과

예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유대의 지도자들의 불완전한 생애를 지적하시고 질책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고 공언했지만 그들의 매일의 행위는 불법을 자행했다. 자칭 유대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이득을 위한 탐욕스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많은 과부와 고아들의 적은 모든 소유를 말도 안되는 이유로 빼았곤 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요한은 3년 이상을 함께 지낸 가룟 유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요한복음 12장 4~6절]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만일, 가룟 유다가 만일 진심으로 올바르게 변하고 싶어했더라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곁에서 지낸 3년 반 동안의 교훈으로 충분히 변화의 경험을 얻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돈에 대한 사랑은 그를 정복했고, 탐욕이 그의 마음 안팎을 지배했다. 사도 요한에 따르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사업을 진전시키는 데 사용되는 돈이 담긴 돈궤를 맡아서 책임지고 있었으며, 그는 종종 그의 개인적인 용도로 그 중에서 얼마를 빼내어 사용하고 있었다.

 

가룟 유다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시지 않고 스스로 찾아온 제자인데, 예수님은 제자로 받아달라는 가룟 유다를 막지 않으셨다.

 

예수님께 부름을 받지 않았던 가룟 유다는 제자들 사이에 끼이려고 힘썼다. 스스로를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고 공언하면서, 그는 매우 열심으로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신실하게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마8:19; 눅9:57)라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배척도, 그리고 환영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마8:20,눅9:58)다는 슬픈 말씀을 하실 뿐이었다.

 

성경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찾아왔을 때,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마태는 "한 서기관(a Scribe)", 누가는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가룟 유다가 어느 정도 랍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며, 꽤 성경과 율법에 지식이 있는 사람인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미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다른 제자들은 가룟 유다가 그들의 동료가 되기를 매우 원하였다.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훌륭한 풍채의 소유자로서 예리한 식별력과 행정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업에서 크게 조력할 사람으로서 가룟 유다를 예수에게 추천하였던 것이다.

 

사실, 유다는 예수께서 메시야가 되심을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의 반열에 함께 끼어서 새 나라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다의 그 믿음은 유대의 지도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기초한 이기적인 신앙의 산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룟 유다의 재물에 대한 욕심과 그의 멀지 않은 미래를 이미 내다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머리 둘 집도 없이 가난하시다"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이 희망을 애초에 끊어버리실 계획이셨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다를 매우 냉담하게 맞아들이시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가룟 유다는 3년 반이라는 짧지만 또한 길다면 긴 시간 동안에, 예수님의 곁에서 그분의 수많은 기적들과 마음의 감동을 주는 말씀을 통하여 구약성경의 메시야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야 했는지를 모두 다 듣고도, 그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잘못된 구원관과 메시야관을 스스로 계속 믿기로 선택했으며, 그 결과로 세상을 향한 사랑과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룟유다는 자신의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의해 드려지는 향유옥합의 예물을 싫어했으며, 오히려 마리아가 그 큰 재물을 허무하게 낭비한다고 대놓고 나무랐다. 

 

이런 방식으로, 유다는 예수님의 통하여 구원의 의미와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감사하는지를 배우는 대신에, 스스로 선생이 되어 마리아의 행위의 타당성에 대하여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잔치의 주인이었던 바리새인 시몬과 가룟 유다는 각각 그들의 품성의 죄된 특성을 고칠 수 있는 예수님의 계속적인 교훈과 모본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을 깨달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바로 앞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이 배웠던 유대 지도자들의 유전을 따르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마침내 그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모든 거룩한 특성들이 죄와 이기심과 탐욕에 온전히 굴복당할 때까지 탐욕을 버리지 않고 계속 품었다. 그 결과로 그는 돈궤를 맡는 일을 자청하였으며, 예수님께 드려지는 헌물을 탐내었다. 갸룟 유다는 예수님께 드려지는 선물과 헌물들을 보고 탐내었으며, 마침내, 막달라 마리아가 깨뜨린 향유 옥합보다도 훨씬 적은 금액에 그의 주님을 팔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결박되어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시는 것을 본 가룟 유다는 그제서야 그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태복음 27장 1~5절]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예수님을 배반하는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회개하고 초대 교회를 세우는데 온 몸을 바쳐 헌신한 사도 베드로와는 다르게,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크게 후회했지만,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믿지는 않았던 것이다. 말의 유창함, 진리의 지식,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청년, 가룟 유다는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품성에 불완전한 요소가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며,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간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우리를 충분히 훈련시키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하기 때문에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분의 품성을 닮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선택함을 받았다.

 

가룟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똑같은 기회를 가졌었다. 

그는 똑같은 귀중한 교훈을 들었고, 수많은 기적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진리의 실천은 그의 욕망과 목적과는 반대되었기 때문에, 유다는 하늘의 지혜를 받기 위하여 자기의 생각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복음 9장 22~24절]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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