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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는 방법(feat.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음과 실천) 본문

bible study [핵심 진리]

영생을 얻는 방법(feat.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음과 실천)

BibleMotivation 2022. 12.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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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젊은 부자 청년

 


A. 시작하는 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율법이며, 또한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다.

이 십계명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에 분명하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해 주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을 증명하셨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모든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써 정결하게 되며(히브리서 9장 22절),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로마서 2장 13절; 3장 20,31절; 7장 7~12절; 8장 3~4절; 13장 8~10절)인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다고 인정을 받는 방법은 결국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서로 사랑하도록 창조된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의하여 첫 인류인 아담과 하와(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하게 된 이후로, 마음 속에 두 마음; 즉, '하나님을 사랑하여 따르려는 마음'과 '나 자신을 더 사랑하여 내 마음대로 하려는 이기심의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로마서 7장 21~23절),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법도 역시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게 된 상태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현재 우리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질병'; 즉, '죄라는 이기심의 질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B. 개와 늑대의 차이점을 통하여 살펴본 현재 사람의 상태

 

개는 그 생김새와 특징 및 습성에 있어서 늑대와 매우 흡사하다. 

그런 이유로 개를 길들여진 늑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개와 늑대를 연구했으며, 그런 많은 연구를 통하여 발견한 것은 개와 늑대 사이에는 단지 0.04%의 차이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017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생물학자 브리짓 폰 홀트 교수와 그녀의 연구팀은 늑대와 개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두 동물의 게놈(Genome)속에서 단지 "GTF21"와 "GTF21RD1"라는 유전자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개들보다 더 활발하고 인간친화적인 개들이 이 두 유전자 사이의 변이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역시 발견했다.

 

또한, 이 두 유전자는 사람으로 따지면,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Williams-Beuren syndrome: WBS)”을 가진 사람의 염색체와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낯선 사람에게도 열정적인 사랑과 신뢰를 주며 매우 사회성이 좋고 지능이 높은 편이어서 자폐증과는 반대편에 위치한 증후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참조: 사이언스 타임즈)

 

즉, 말하자면 개는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을 가진 늑대라는 말이며, 주인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유전적인 질병에 걸린 늑대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들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이 그냥 좋아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이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기초로 사람의 현재 상태를 성경에 빗대어 설명하면, 원래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여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지금은 어떠한 이유나 원인 때문에; 즉, 죄 때문에 두뇌 속의 유전자가 변형(퇴화)되어서 자기자신을 남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로 변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이기적인 우리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당신의 아들에게 대신 뒤집어 씌우셨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셨다.

어쩌면, 하나님의 사랑은 참 바보같은 사랑이며, 우리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처럼 보일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사랑은 헛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이 약속 위에 세워져 있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바로 이 약속의 말씀이 곧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기심과 불순종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질병이 고쳐져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는 약속인 것이다.

 

 


C.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의 왕관'과 '세상의 왕관'을 모두 차지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왕관에는 ‘이 왕관을 쓰는 자는 행복과 영생을 누릴 것이다.’라고 적혀 있고, 이 세상이 주는 왕관은 ‘지상의 보물, 부가 곧 권력이다. 이 왕관을 쓰는 자는 명예와 부를 가질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주는 왕관을 향해 달려가면서, 다른 이들을 서슴없이 짓밟고 있다.

 

또한,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왕관"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가끔식 그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낀 듯이 보이지만, 그 가치와 영광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하늘 왕관을 향해서 억지로 손을 내밀지만, 이 세상의 왕관을 향해서는 반드시 손에 꽉 움켜쥘 목적으로 힘껏 손을 뻗는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세상의 왕관을 열렬하게 추구하는 사이에, 하늘의 왕관은 그들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마태복음 6장 19~21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했다.

 

[마태복음 19장 16절]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위의 이야기는 마태복음 19장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18장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는 이 사람이 '청년'이었다고 기록하고, 누가는 '유대의 관리'라고 각각 기록하고 있다. 

 

마태, 마가, 누가가 기록한 이 이야기 속 남자의 공통점은 이 남자가 큰 부자였고, "자기의 소유를 팔아 남에게 나누어주라"는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는 근심하면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이 부자청년의 대화를 통하여 몇 가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나 자신이 어떤 선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선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잘 안되더라도, 그런 생각이 드는 매순간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자신을 끌고 가야 한다. 

- 같은 내용이 기록된 마가복음 10장과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이 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부르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질문도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묻는다. 

- 즉, 기본적으로 이 청년의 인생은 부유하면서도, 동시에 그 당시 유대인들 중에서 부자들의 관습을 따라 친척이나 가족 중의 힘든 사람이나, 또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돕는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유대인들에게는 친척이나 가족 중에서 부유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다른 가족의 구성원들을 돌보는 풍습이 있어왔는데, 구약성경의 룻기서에 등장하는 보아스가 애초에 룻을 도와준 것의 바탕에는 바로 이런 유대의 풍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이 청년은 지금 예수님 앞에서 유대의 풍습에 따라 철저하게 모든 것을 실행해 온 자신에 대하여 당당하게 본인 정도면 의롭지 않느냐라고 말하고 있던 것이었다.

-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의 자만심에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신다. 

 

[마태복음 19장 17~1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 하지만, 이 말씀을 듣고도 이 청년은 아직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선함과 악함을 "계명의 실천"으로 구분하신다는 사실이다.

-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심판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명백한 법이 필요하며, 그 법을 기준으로 피고인이 죄인인지 아니면 죄가 없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그가 묻자 예수님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태복음 19장 17절)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9장 17~1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을 나열하시면서, 굳이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은 언급하지 않으셨다

 

- 그리고, 그 의도적인 생략을 이 젊은 부자 관리는 곧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이 청년은 예수님께 다시 질문한다. 그런데, 이 청년의 질문 속에는 또다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믿음이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9장 20절]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셋째, 계명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한올의 이기심도 없이 깨끗해진 성도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정하시어, 성도의 마음 속에 거하시는 예수님께서 계명을 실천하게 만들어주실 때,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서 사람이 계명을 온전히 실천했다고 받아들이시는 때이다.

-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이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다 지켰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흠이 없이 보였고, 또한 정말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철저했으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까지 하셨다.

 

[마태복음 5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이 가진 단 하나의 부족함; 즉, 하나뿐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음을 아셨다. 

예수님께서 이 청년에게 지적하고 싶으셨던 것은 바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를 드러내는 외식하는 신앙"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킨다는 것과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그 계명들을 나의 노력으로 하나하나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저절로 하나님의 계명(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을 잘 지켜지게 된다는 것이며, 바로 이 진리를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선행과 계명의 실천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선행이며 계명의 실천이다. 즉, 왼편 염소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 이 왼편염소의 신앙이 바로 외식하는 신앙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안좋게 보시는 것임과 동시에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심어준 정신이자, 가인의 잘못된 제사의 정신이며, 죄의 본질적인 정신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 정신을 계승한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바벨론인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넷째, 이 부자 청년의 최종 선택이 우리의 선택이 되지 않도록 매순간 예수님과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배이며, 예배가 곧 삶인 것이다.

"네가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와 나누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열번째 계명; 즉,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에 해당하는 것임을 이 청년은 알았지만, 곧 그는 풀이 죽어 근심 속에 예수님을 떠나갔다.

- 결과적으로, 이 유대의 젊은 관리는 이 세상이 주는 왕관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자를 싫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 그리고, 꼭 부자가 아니라도 사람은 언제나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넘어질 수 있다.

-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드리면 자신과 복음 사업 모두에 유익하지만,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것을 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저주가 된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너희 소유를 하늘 제단 앞에 드렸느냐?’라고 우리에게 물으신다. 

그리고 그 질문의 의미는 곧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장 15~17절)"라는 뜻인 것이다.

 

이 세상의 부와 명예에 욕심이 나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한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지만, 이제 곧 다가올 하늘나라에서 그 사람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열왕기상 18장 21절]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022년의 마지막 달도 이제 곧 모두 채워져 간다.

 

아직 올해가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우리 옆에 도움이 필요한 가족이나 이웃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조금이라도 그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경험을 함께 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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