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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한 불편한 진실 - part 1 본문

bible n life [성경과 삶]

기도에 대한 불편한 진실 - part 1

BibleMotivation 2022. 12. 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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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어떠해야 할까?

 


시작하는 말

 

2022년 12월 현재 이 세상에는 대략 4,000개가 넘는 종류의 종교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불교, 힌두교, 기독교를 비롯하여,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조로아스터교, 또한 불교나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들과 기독교에서 파생된 종교들, 그리고 남미나 아프리카 및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토테미즘과 이교신앙을 뿌리에 둔 수많은 종교들이 역사를 따라서 발생하고 사라지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세계 4대 종교라고 일컫는 종교들은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불교인데, 각 종교를 믿는 대략적인 인구와 전 세계 인구 대비 각 종교의 비율은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아래와 같다.

 

  • 기독교 (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회 포괄) 22억 (33%)
  • 이슬람교 16억 (19.6%)
  • 힌두교 10억 (13.4%)
  • 불교 5억 (5.9%)
  • 무교 7억 미만 (2005년 기준 당시 전 세계 인구 65억 중에서 11.9%인 약 7억 7천만명, 현재는 7억 명 미만 추정)

 

전 세계의 인구가 2021년 말을 기준으로 대략 78억인 것을 감안했을 때, 전체 지구의 인구 중에서 약 67%가 세계 4대 종교 중에 하나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좀 예전이지만 17년 전인 2005년에 출판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 중 11.9%가 무교이며, 그 중에서도 약 2.3%가 무신론자라고 한다. 이 통계는 불교와 같이 무신론적 종교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그러나 2005년 이후에도 종교인구가 무종교인구보다는 빨리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종교를 가진 인구의 숫자는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종교의 3대 요소와 기도

사실,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의 신봉자들이 믿고 있으며 기초로 삼고 있는 신조(Creed)와 교리(Doctrine)가 있게 마련인데, "종교"라고 구분되어질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없다면, 정식 종교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참고로, 종교의 기본 3대 요소는 "신(God)", "경전(Bible)", 그리고 "교리(Doctrine)"이다.

 

그리고, 몇 가지 더 빠질 수 없는 것들 중에는 "구원론", "성도론", "예배론" 등이 존재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모든 종교는 자신들이 믿는 신께 드리는 "기도"가 있는 것도 역시 종교를 특징짓는 하나의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도는 분명히 종교를 특징짓는 하나의 요소이다. 

 

힌두교인들; 즉, 무슬림들은 그들이 이 세상 어디에서 살고 있던지, 하루에 다섯 번씩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그들의 성지인 "메카(Mecca;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함)"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불교의 스님들은 불교 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할 때 목탁을 치면서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참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어떠한가?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영혼의 호흡", "하늘나라의 창고를 여는 열쇠" 등 여러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헌금을 드리는 것을 일종의 의식이나 부적; 즉, 좀 더 쉽게 말하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하나의 부적이나 보험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속에는 얼마나 많은 "~해주세요"가 포함되어 있는가?

 

또한, 겉으로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가 새벽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또는 "내가 이번 달에 교회에 갖다 바친 헌금이 얼만데..."라는 생각을 농담으로라도 하지는 않았는지..?

 

예전에도 한 번 적었었지만, 청년 시절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을 믿던 친구가 결혼 후에 찾아온 몸의 질병과 삶 속에서의 여러 고민들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끝내 자신의 수년간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자, 안타깝게도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면서 교회와 신앙을 떠났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친구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부디,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기를 바란다.

 

자, 한번 생각을 해보자.

 

내가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꼭 들어주셔야만 하는가? 이미, 나는 구원받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면,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내가 필요한 요구사항만을 말하는 하나의 의식이며, 하나님께서는 마치 은행의 ATM 기계처럼 기도하는 사람의 소망을 항상 들어주셔야 하는가또는, 만약,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나의 소원과 소망을 이루어주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기도는 정말 무엇인가?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왜 주셨는가?

 

이번 시리즈를 읽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이 "기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참고로, 이번 "기도에 관한 불편한 진실" 시리즈는 예전부터 계속 묵상하고 생각해왔던 부분을 모두 모아서,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은퇴하신 어떤 목사님의 "기도"에 관한 설교를 듣고 성경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을 참조하여, 적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시작한다. 

 

 


기독교의 깨달음의 정점,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 

(1) 기독교의 깨달음의 정점

 

불교의 마지막 깨달음의 경지를 "해탈(Nirvana)"; 즉, "몸과 마음의 고뇌와 번뇌로부터 해방되는 것 또는 해방된 상태"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깨달음의 정점(The Pinacle of Christian Enlightenment)은 무엇일까?

 

사실, 위의 질문의 정답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목적과 연결되어 있는데, 바로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우주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으로써의 나 자신의 상태와 위치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하면, 기독교의 깨달음의 정점은 곧 "사람인 나 스스로의 무능함,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전지전능하심을 마음 속 깊이 더 이상 오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깨닫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의 기도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한낱 힘없고 스스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피조물인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등에 업히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많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가운데서도 "해결하기가 어려워서 좀처럼 해결하기 힘든 문제"와 "해결하기가 전혀 불가능한 문제"가 존재한다. 마치, 사람이 한강을 헤엄쳐서 건너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가능한 것과는 반대로, 사람이 태평양을 헤엄쳐서 건너는 것은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딱 그 수준까지만 살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갈고 닦아서 최대한 발휘하여, 아마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수준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임재를 내 삶 속에서 누리는 것: 기도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내 삶 속에서 누리는 것"을 말한다.

 

기도 속에서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내려다 보신다.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사람을 연결하시는 분은 바로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신인(God-Man); 즉,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께서만 실행하실 수 있는 "성육신"의 신비이며, 비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이 오른손으로는 하늘의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고, 다른 손으로는 인류의 손을 잡으셔서,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시작해서, 기도를 끝맺을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인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구원의 이름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내 삶 속에 경험하게 하는 매우 중요하고 성경적인 행동이며, 거룩한 시간인 것이다.

 

 


기도의 시간은 일대일로 오직 나 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오직 경험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기도는 사람이 가져온 주제로 하나님과 일대일(One on One)로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는 사람의 요구사항만을 계속 말하는 시간일까?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는 미국의 저명한 뉴스 네트워크 채널인 "CBS(Columbia Broadcasting System)"의 앵커 댄 레더(Dan Rather)와의 인터뷰에서 "아침마다 기도를 하신다고 했는데, 기도할 때 무엇이라고 하세요?"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듣지요.(I listen.)"

 

앵커인 댄 레더는 또 다시 물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시던가요?"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분도 듣지요.(He also listens.)"

 

그리고나서, 테레사 수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도 설명할 수 없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돈을 버는 일을 위하여 시간을 여러 가지로 분배하여 살아간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시간에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크기와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길이는 정비례한다. 그리고 오직 그 시간을 경험하고,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유대관계를 경험한 사람만이 기도의 필요성과 유익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과 믿음, 그리고 구원은 분명히 개인적이다. 그 누구도 나 대신에 하나님을 믿어줄 수 없다. 나의 부모님이나 친구의 신앙과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의 신앙과 믿음은 전도와 봉사의 측면에서는 또한 사회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꼭 기억해야 한다.)

 

 

(2) 기도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듣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필요를 우리가 말하기 이전에 다 아신다. 그리고 이미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책과 도움, 그리고 보상을 미리 다 준비하고 계신다.

 

다만,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 즉,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쓰고 계신 것은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다. 오히려, 사람에게는 현재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그런 인간적인 문제들과 이 세상에서의 걱정과 근심들의 해결이나 극복은 하나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 힙겹게 살아가는 그분의 아들과 딸들이 그런 삶의 문제나 필요 등을 신경쓰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더 신경을 쓰기를 바라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죄된 인간인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장 최고의 것; 즉,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면 주시는 가장 최상의 것, 그리고 우리가 가장 최고로 구해야 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1장 9~13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절실하게, 그리고 최고로 구해야 할 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이미 하나님께서 모두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만 따라가면 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사람에게 주어지는 성령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매일 매일 경험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으로부터 눈을 돌려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대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셔서 음식을 주신 것처럼,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것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도와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1~33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16장 24~2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이시지만 세 분이시며, 각각의 인격체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점점 더 가깝고 깊게 누리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더 함께 있고 싶고 더 대화하고 싶어진다.

기도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을 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음성과 그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Kierkegaard: 1813-1855)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 기도를 오래 했다. 그는 처음에 기도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점점 더 조용하게 되어서 결국 기도는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3)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맞추는 것: 성화의 실천의 방법

 

기도의 최고의 경지는 하나님께 나를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 속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진다는 것이며, 내 자신의 자아와 이기심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모두 굴복된다는 의미이다.

 

창세기는 에녹이 아들을 낳은 이후,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5장 21~24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상태는 어땠을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상태를 모세를 통하여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다.

 

[출애굽기 34장 29~35절]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모세는 약 40일 동안 하나님과 같이 있었는데,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에녹은 어떠했겠는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은 어느 날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가셨다.

에녹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 날은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매일 동행한 어느 날이었다.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녹아, 이제 해가 지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야지?"

 

에녹은 대답했다.

"예, 아버지, 이제 돌아가야죠."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그런데, 네 집보다는 내 집이 좀 더 가까운 것 같구나. 오늘은 우리 집에 가지 않겠니?"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삶은 하나님과의 동행의 삶이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과 따로 시간을 내어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면, 다시 예수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에 에녹처럼 하나님의 집에 데려가실 것이다.

 

우리 모두 지금 무릎을 꿇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주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금도 기다리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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