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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한 불편한 진실 - final part 본문

bible n life [성경과 삶]

기도에 대한 불편한 진실 - final part

BibleMotivation 2022. 12. 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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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지난 「기도에 대한 불편한 진실」 파트 1 에서는 종교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3대 요소 이외에도 어느 종교를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기도"가 종교의 가장 특정적인 요소 중에 하나인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약간은 부정적인 질문들; 하지만 평소에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을 몇 개 나열하였으며, 그에 대하여 기독교의 깨달음(믿음의 성장)에 대한 설명과 기도의 의의에 대하여 성경에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된 에녹의 경험과 몇몇 세상에 알려진 위인들의 일화를 통하여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았다.

 

짧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기독교의 깨달음의 정점은 예배의 목적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 즉, "사람인 나 스스로의 무능함,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전지전능하심을 마음속 깊이 더 이상 오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깨닫는 것"이다.

 

둘째, 기도는 "한낱 힘없고 스스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피조물인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등에 업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수준으로 사는 것이다.

 

셋째, 오직 예수님만이 오른손으로는 하늘의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고, 다른 손으로는 인류의 손을 잡으셔서,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실 수 있으시며,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구원의 이름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내 삶 속에 경험하도록 인도한다.

 

넷째,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며, 기도자가 가진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자의 삶을 맞추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몇 가지 불편한 질문들과 성경의 답변: 첫째 질문과 답변

 

아래 세 가지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기도에 대한 질문들 중에 몇 가지이다.

 

첫째, 무릎 꿇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둘째, 아무리 기도해도 Yes라는 응답보다는 No라는 응답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기도해야 하는가?

셋째,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어차피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인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첫째, 무릎 꿇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성경은 분명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기록한다.

 

[시편 139편 2절]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누가복음 12장 7절]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 것을 채워주시는가? 아니면,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지 않아도 미리 알아서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우리가 구하지도 않은 구원, 영생, 천국도 약속하셨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며, 오직 그것들만을 골라서 주시는 것이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가 죄인이며, 죄로 인하여 우리의 생각과 지혜가 구원, 영생, 사랑, 천국 등의 영원한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생각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이 세상에서 눈으로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먹고 살 것만을 주로 걱정한다.

 

어렸을 때, 개미를 가지고 장난을 쳐 본 적이 있는가?

어느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 마리 개미가 길을 잃었는지 책상 위에 올라와서 책상 이끝에서 저끝까지 대륙횡단을 하려고 했다. 장난을 치고 싶어진 나는 그 개미가 가는 앞에 각종 필기도구들로 장애물을 놓기 시작했다. 지우개, 연필, 볼펜, 자, 심지어는 개미에게는 엄청나게 커 보이는 필통까지 개미가 전진하는 길 앞에 놓아 보았다. 그러나, 개미는 내가 앞에 놓아둔 모든 장애물을 다 피하거나 돌아서 끝까지 자신이 목표로 한 책상의 반대편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개미가 가는 길의 앞쪽에 책상 위의 움푹 파인 구덩이가 있었는데, 이것을 모르는 개미는 계속 앞으로만 전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개미 앞에 일부러 장애물을 놓아서 이제 곧 가까워지는 구덩이를 개미가 피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시련을 피하고, 깊은 구덩이를 피해서 책상대륙횡단을 무사히 마친 개미를 원래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경험을 우리의 인생과 신앙생활에 빗대어 보면, 개미는 바로 우리; 즉,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른다. 무슨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저 위에서 한번에 내려다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련과 고난에 지금 어떤 결정으로 내리며, 준비해야 하고, 또한 무엇이 필요한지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만을 주시는 것이다.

 

[이사야 44장 3절]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마태복음 7장 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인간은 바로 앞의 고민과 걱정을 바라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까지 바라보신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의 여정 속에서 구원받기에 부족한 어떤 결핍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채워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셔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 알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우리가 말하고 하나님이 듣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 마음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임재를 내 삶 속의 실제적인 경험으로 깨달을 때, 나 스스로가 이 세상과 나의 신앙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새롭게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상황을 바꿔주실 수 있지만훨씬 더 많은 경우에 기도하는 사람 그 자신을 바꿔 주신다.

 

기도의 가장 최고의 결과는 기도하는 나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여과장치이다.
이 장치를 통하여
내 욕망, 내 이기심이 다 걸러지고
하나님의 뜻만 걸러져 나온다.
-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

 


 

둘째 질문과 답변

 

(2) 둘째, 아무리 기도해도 Yes라는 응답보다는 No라는 응답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기도해야 하는가?

 

20세기 최고의 기독교변증가인 C.S. 루이스가 9살일 때, 그의 어머니는 암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그의 형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의 어머니를 치료해 주시기를 열심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결국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이 루이스 형제는 24년 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나중에 다시 믿음을 찾아서 돌아왔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시는가?"

 

성경에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예시가 많이 등장한다.

 

다윗은 자신이 우리야를 죽여가면서까지 얻은 부인 밧세바를 통해 얻은 아이가 질병으로 아파할 때, 하나님께 그의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지만 결국 죽었다.(사무엘하 12장)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끝까지 살리셨다.(열왕기상 19장)

사도바울은 자기 몸의 가시인 나쁜 시력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수없이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시력을 회복시키지 않으셨다.(고린도후서 12장)

 

특히,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고린도후서 12장 5~10절]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기도에 대한 성경의 진실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No"도 역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Yes"보다 더 큰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역사교육을 통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한국의 종교인이자 교육자인 "김교신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고백했다. 그가 섣달 그믐날 지난 일년을 돌아보며 기도할 때였다.

"하나님, 지난 일년 동안 저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가 드린 기도의 응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 감사한 것은 많은 경우에 제 기도를 기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절박하게 드렸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고, 그는 오히려 그것에 결과적으로 더 감사했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 성숙한 기도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면 어떨까?

내가 품은 생각대로 나의 삶과 이 세상이 돌아간다면, 이 세상과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저 나라는 망해야 되고, 더 회사는 부도가 나야 되고, 저 사람은 좀 혼이 나야되고...' 등등..

 

아마도 온 세상이 난장판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리 그래햄(Billy Graham) 목사님"의 사모님의 간증을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심을 감사드립니다. 만일, 제 모든 기도를 응답하셨다면 저는 여러 번이나 틀린 남자와 결혼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No"는 불응답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은혜로운 응답이라는 사실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질문과 답변

 

(3) 셋째,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어차피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인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에베소서 6장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시편 62편 8절]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평소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장 7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한 번 쯤은 모두 들어봤으며, 또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의 최종 대답을 아래와 같이 황금률과 함께 기록한다.

 

[마태복음 7장 11~12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황금률)

 

그리고, 이와 똑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11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는 예수님의 대답을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11장 9~13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주시는 "좋은 것"은 바로 "성령"이라고 기록하신다.

 

이런 말을 하면 비기독교인이나, 또는 어떤 경우에는 기독교인들까지도 좀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신앙생활은 아래의 두 가지를 좀 더 명확하게 깨닫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깨닫는 것이며, 둘째는 반대로 인간의 무지몽매함을 깨닫는 것이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서 제일 처음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구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열왕기상 3장 3~9절]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그러자, 솔로몬의 겸손하고 진실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면서, 그가 구하지 않은 그 이외의 모든 것들; 부귀와 영광, 그리고 장수의 축복까지 모두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열왕기상 3장 10~14절]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자신의 위치를 아주 잘 알았던 어린 왕 솔로몬의 겸손함과 하나님께 진실된 그 태도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도에 성경에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고 기록하신다. 

 

그렇다면, 솔로몬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곧 극한의 고민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예수님의 모본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

 

[누가복음 22장 42절]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 마음대로 해주옵소서'가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왜곡된 필요의식'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의식(Consciousness, Awareness)이 있는데, 하나는 "필요의식(The Awareness of Needs)"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결핍의식(The Awareness of Deficiency)"이다.

 

첫번째 의식인 "필요의식"은 매우 복합적이다.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을 필요하다고 느끼는 의식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의식은 매우 합리적이고 건강한 필요의식이다.

 

그러나, 필요한데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또는 필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잘못된 의식인 것이다.

 

예를 들면, 거식증(Anorexia)이나 폭식증(Sitomania, Bulimia Nervosa)이라고 불리는 질병이 바로 이런 잘못된 필요의식을 느낌으로 발생되는 정신적 질병들이다.

 

사람은 며칠 동안 굶으면 당연히 배고픔을 느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실제로 배는 부른데도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증상이 매우 극심해지면 폭식증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과식은 신체에 부담을 주며, 병적 발열 상태를 일으킨다.
그것은 위에 과도한 분량의 혈액이 모이게 하므로 사지와 수족을 급히 차게 만든다.
또 이것이 소화 기관의 일을 마칠 때에는 무기력하거나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계속하여 과식하는 어떤 이들은 이 기진맥진한 느낌을 배고픈 상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소화 기관의 과로상태(過勞狀態)에서 오는 헙헙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사 속의 폭식증; 즉, 왜곡된 필요의식은 어떨까?

 

우리의 삶 속에도 역시 그 당시에는 절실했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별로 절실하지 않았던 것들이 매우 많다.

'그 때 그 물건을 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때 그 남자 말고 다른 남자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다른 과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등등

 

이렇게 인간에게는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일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사람에게 쓸데 없는 필요 의식과 그것의 좋지 못한 결과가 이렇듯 수없이 많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셔야 하겠는가?

무조건 내 요구에 기초하여? 아니면, 절대적인 필요에 기초해서 응답하셔야 하는가?

 

그렇다면,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내 뜻대로 응답되는 것이 더 옳은가?

 

많은 경우에, 우리가 쓸데 없는 것에 너무 열렬하게 기도하면, 오히려 우리의 믿음과 신앙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믿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억해야 한다.

 

내일 소풍가는 아이들은 내일 날씨가 매우 맑고,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모내기를 해야 되는 농부들에게는 비가 내려야 좋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내일 비가 내리기를 기도한다.

 

한국과 일본 축구경기를 시청하는 양국가의 국민들은 어떤가? 한국의 성도들은 한국이 승리하기를 기도하고, 일본의 성도들은 일본이 승리하기를 기도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는가? 기도를 더 쎄게 하는 쪽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기도의 진실이 있다. 

바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 중에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없다는 사실이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최선의 것만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마치는 말

 

여기에 기도의 공식이 있다.

 

기도가 짧아지면, 고생이 길어진다.
기도가 길어지면, 한숨이 짧아진다.

그리고,
오래 기도하면, 오래 안전하다.
- 작자 미상 -

 

 

기도 없이 사는 삶은 총없이 전장에 나가는 병사와 같다.

그래서, 성경책과 역사 속의 수많은 믿음의 노독들은 다음과 같은 경험의 조언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라! 예전에 결코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기도하라!"

"열렬하게 쉬지 말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

 

그러나, 우리가 마음 속 깊이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나는 너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 24시간 기다리고 있겠다"는 생명보증의 약속이라는 사실이다.

 

"기도에 실패하면 인생이 실패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무릎으로 사는 존재들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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