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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②: 성경이 말하는 두 가지 믿음은 무엇인가? 본문

bible study [핵심 진리]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②: 성경이 말하는 두 가지 믿음은 무엇인가?

BibleMotivation 2023. 12. 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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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 시리즈의 지난 첫번째 글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겪었던 첫번째 사건에 관하여 자세하게 살펴보았는데, 잠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사건의 배경은 초막절이 거의 끝나갈 때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방법과 계획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제도와 절기를 통하여 알려 주셨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절기들 중에서 대속죄일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마지막 절기이며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늘나라에서 누릴 기쁨과 영광을 표상하는 초막절에 율례를 따라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계셨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 속에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려 합법적으로 예수님을 처단하려는 계획 속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일부러 간음하게 만들어서 예수님 앞에 데려왔다.

 

 또한, 이미 그런 간악함을 모두 꿰뚫어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 자신들이 율법을 잘 알고 잘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의 원래의 목적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던 유대 지도자들과 또한, 그들에게 잡혀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각각 어떤 마음과 방법을 가지고 대하셨는지를 알아보았다.

 

 창조주이시자, 율법의 창시자이며, 사랑과 율법 그 자체이신 예수님 앞에 스스로 율법을 잘 알고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이기심에 가득 차서 율법을 범하면서까지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 앞에 데려왔는데, 그 모습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두 부류의 모습과 동일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원래의 목적을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의 순기능인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경험을 통하여 참된 용서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때의 그 "용서받은 경험"이 그녀의 믿음에 큰 영적 자양분이 되어, 그녀의 마음 속에 심겨진 예수님의 말씀의 씨앗을 틔우고 말씀을 실천하는데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그 이후에 이 때의 경험과 일곱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해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반응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한 가지 큰 행동을 하게 된다.

 

오늘 성경인물연구 「막달라 마리아」 시리즈의 세번째 글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두번째 사건을 살펴보기 전에 성경이 말씀하시는 두 가지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기를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과연 지금 어떠한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원한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하는 믿음은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체험적이고 실천적인 믿음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하나님의 율법 중에 일부분을 폐했고 다시 쓰셨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람의 모든 구원의 과정이 마무리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살인과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회개가 없어도 구원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소위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은 사실상 술과 담배 및 유흥을 세상 사람들처럼 모두 즐기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세상의 주는 목적을 따라 그들의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얻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교회 안에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있음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계시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절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 다리를 걸칠 수는 없다. 세상이 원하는 것을 통하여 돈 잘벌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천국에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부자가 하늘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기 위하여 가져야만 하는 생각과 신념은 성경이 제시하시는 구원의 목적과 목표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과 신앙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거의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사이의 목적과 목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고, 바라보며, 추구하는 것을 뼈 속 깊이 닮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희생으로 사람의 모든 구원의 과정들이 전부 마무리 되었기 때문에, 성화의 과정이 필요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중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구원은 보장된 것이라는 일련의 주장들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또한, 진리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장 29~30절]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마태복음 5장 17~19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성경은 정말 사람이 오직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구주이신 사실에 동의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가?
  • 성경은 정말 아무런 실천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가?
  • 정말 사람의 마음 속에 새 마음이 필요하지 않는가?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에 마음으로 동의하기만하고, 아무런 실천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거짓말장이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기록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롬1:17)"다는 말씀이나, "우리가 다 하나님의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4:13)" 성장한다는 말씀도 거짓말이 되어 버리며, 또한, 히브리서가 기록하고 있는 "하늘 지성소(하나님 보좌 우편)에서의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봉사(히3:1; 5:6,10; 6:20; 8장전체; 12:2; 등)"도 역시 모두 거짓이 되어 버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와 팔복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 중에서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장 15~16절;19~23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두 가지 믿음

 

① 두 가지 믿음의 정의

성경은 분명히 두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특별히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예수님께서 한 율법사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10:26)"고 물어보신 것처럼, 위의 성경 말씀을 우리는 매우 자세하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 대하여 모두 하나가 되어야지만, 그 결과로써 온전한 사람이 되며, 예수님의 온전한 품성에 닮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이다.

 

② 원어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믿는 것"과 "아는 것"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이 사용한 "믿는"과 "아는"이라는 두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다음과 같다.

① 믿는 것 - πίστις(피스티스; 4102; 설득, 신용, 신뢰, 약속, 서약, 등)

 아는 일 - ἐπίγνωσις/ἐπιγινώσκω(에피그노시스/에피그노스코; 1922, 1921; 알다, 이해하다, 인식하다, 인정하다, 배움으로 알다, 경험으로 알다, 등 - 히브리어 원어의 "יָדַע;야다;창4:1"와 같은 의미의 단어)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3절을 다시 원어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제대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세주라는 것을 마음 속에 깨달은 것을 기초로 그분을 믿겠다는 약속, 또는 서약(결심)을 하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신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단계의 믿음'을 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은 바로 '예수님께서 나의 개인의 구세주 되신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배움과 경험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는 말'로써, 곧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갈 때 나를 의롭다 칭해주시는 그 은혜를 매일 더 깊이 경험하면서, 그분의 품성을 닮아가도록 매일 간절히 기도하며, 일상생활 속의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나의 마음 속에 심겨진 성경말씀의 기준이 생각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러한 순간에 하나님께 나의 의지를 맡겨서 성경의 진리대로 행동하기를 선택하게 될 때, 얻게 되는 경험적인 믿음과 믿음의 성장의 단계'를 말한다.

 

참고로, 위에서 확인한 "알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단어인 ἐπιγινώσκω(에피그노스코)는 구약성경에서 경험적인 지식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인 "יָדַע(야다; 3045; '경험하다, 동침하다, 이해하다, 깨닫다, 인지하다' 등)"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는 일"; 즉, 헬라어 ἐπίγνωσις(에피그노시스)는 "계발된 신령한 지식"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이 "계발된 신령한 지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에베소서 1장 17~1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즉, 에베소서 1장 17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엡4:13)"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 즉, 정확한 지식을 말하는데, 이것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인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실제적인 경험; 매일 나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나 스스로를 부인하고(나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사탄의 유혹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선택할 때에,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주시는 품성변화(시편 51편 10절)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점점 더 명확하게 알아가는 지식(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인 것이다.

  • 나 자신을 부인한다(마16:24; 막8:34; 눅9:23)는 말은 나의 매순간의 삶 속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와 사망의 법(롬7:21~24; 이기심; 자기사랑)에 호소하는 사탄의 생각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 시편 51편 10절의 다윗의 고백과 기도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품성의 변화가 절대로 인간 스스로가 선한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요청하는 빌립에게, 분명하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징검다리가 되신다는 진리를 밝히셨다.

 

③ 경험적인 믿음의 기초와 성화의 개념

 

이런 "경험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기꺼이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다. 이것은 사색이나 명상, 또는 묵상에 그치거나 단순한 지식적인 동의에 의존한 지식이 절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지식; 또는 믿음은 분명히 영적 기능이 활발하고 신령한 진리에 민감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체험적인 믿음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체험적인 신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날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품성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어 그리스도인의 영혼과 마음을 감동시켜 날마다 더 거룩하게 살도록, 날마다 예수님의 온전한 품성을 닮아가도록 도와주신다.

 

신학적으로는 이러한 믿음의 성장의 과정을 성화(Sactification)라고 부르는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의 정의(롬1:1~2절; 16~17절)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믿음의 성장에 관하여 함께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전에도 설명했지만, 위의 성경절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아직 가톨릭 신부의 신분일 때, 당시에 읽는 것이 금지되었던 신약성경을 밤중에 몰래 펼쳐서 읽고 종교개혁을 결심하게 된 바로 그 성경절이다.

 

위의 성경절에서 "믿음에서 믿음으로"에 해당하는 원어는 "εκ πιστεως εις πιστιν(에크 피스튜스 에이스 피스틴)"으로써 여기에서 사용된 2개의 전치사 중에서 처음에 사용된 "εκ(에크)"는 '장소', '시간', '원인'을 모두 명시하는 전치사이며, 나중에 사용된 전치사 "εις(에이스)"는 도달하거나 들어가야 하는 마지막 지점을 지적하는 전치사로써 '결과', '목적지', '최종방향' 등을 의미한다.

 

즉, 로마서 1장 17절을 신약성경이 원래 기록된 원어인 헬라어의 의미 그대로 다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 내가 믿음을 처음 가지게 된 장소, 시간, 원인 등 모든 것으로 시작하여 내가 도달해야 하는 최종 수준의 믿음까지

 

결과적으로, 성경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정말 명확하게 성화의 개념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즉, 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믿음과 그분께서 우리의 삶과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이 변하고,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을 매일 경험하면서, 매 순간의 사탄의 유혹 앞에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성경말씀의 원칙을 선택하는 삶을 연습해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구원받는 실천적인 믿음"

 

위에서 확인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두 가지 믿음의 상태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책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즉, 성경의 핵심기별을 한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을 만한 성경구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모두 사랑하신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두를 구원하시지는 않는다.
  • 하나님께서는 오직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구원하신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하여 지금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고, 그분을 이 세상의 구세주로 믿고 있지만그런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 자신의 구세주이자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온전히 믿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결국, 구원 받는 그리스도인은 바로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가 아니라 "나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성도", 또는 "남은 자손"에 속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 14장 12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즉,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은 곧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가 아니라 "나 자신의 구주"로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며, 지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경험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구원받는 실천적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맺는 열매

 

[로마서 3장 10~12절]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은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 사랑, 소망을 비롯한 모든 선한 것들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기초로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다.

 

[야고보서 1장 17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결국, 우리의 의와 구원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이며, 그 과정 속에 단 하나도 인간 스스로의 노력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지에 대한 결과는 분명히 겉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마태복음 7장 20~21절]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의 결과에 대하여 명확하게 "성령의 열매"라고 기록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5장 22~24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늘 나는 성령의 열매를 이웃에게 나타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나 스스로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선을 행하는 것조차도 모두 하나님께 맡겨서 내 마음 속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말과 행동을 주관하시도록 나 자신을 내어 주는가?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다(에베소서 4장 5~6절).

 

그리고, 선택은 오늘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지식적인 믿음만 가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창조하시도록 온전히 내어 드릴 것인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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