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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④ - 가룟유다와 시몬의 믿음 본문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④ - 가룟유다와 시몬의 믿음
BibleMotivation 2024. 1. 7. 18:52
시작하는 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받고 난 이후에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라가다보니 다시 자신의 가족이 있는 베다니로 돌아가게 되었다.
또한,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가다보니 바리새인 시몬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곳에서 마리아는 대중들 앞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그녀가 모든 죄된 과거를 뒤로하고 참된 용서를 경험하였다는 사실을 증명 받을 수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의 향유옥합을 깨서 예수님의 발과 머리에 바른 사건은 그녀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넘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여주시고 이끄시는 길을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을 통하여 무엇을 나타내고 보여주시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녀의 삶의 모든 길을 하나님께서 이끄셨다는 증거가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은 열매로 나타났는데, 바로, 그녀의 믿음의 고백; 즉, 전심으로 드린 감사의 마음과 행동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던 것이다.
[마태복음 7장 16~21절]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요한복음 14장 15절; 15장 10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계시록 14장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마리아는 그저 예수님을 따라갔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진실된 감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사실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사용하셨다.
막달라 마리아의 삶은 2024년 새해를 시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큰 영적 교훈을 준다.
바로, 한 그리스도인이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결국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분명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우리의 눈을 떼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며, 또한, 그 길에서 당하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능력과 해결책을 보여주실 것임을 믿는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오늘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 시리즈의 마지막 글에서는 시몬의 잔치에 함께 있었던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주변인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하는 "단지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상태"를 함께 살펴보면서, 2024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경험적인 믿음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를 원한다.
향유옥합 사건의 주변인들의 이야기
매우 값비싼 향유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린 막달라 마리아의 행동은 온전히 순수한 믿음에서 나온 감사의 행동이었으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끄신 결과였다.
반면에, 그 잔치 자리에 있었으며 막달라 마리아를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죄된 과거를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대한 두 가지 시선과 생각이 있었다.
사복음서의 기자들은 전부 잔치가 진행되는 집 주인인 바라새인 시몬의 생각,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가룟 유다의 생각 중에서 한 가지는 각각 기록하고 있으며, 각 성경기자들의 표현을 옮겨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마태복음 26장 8~9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가복음 14장 4~5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 중요 원어 설명
*무슨 의사로 - τίς(티스; 5101; 무슨, 어떤, 무엇) + εἰς(에이스; 1519; 어떤 소명이나 목적을 가지고, ~에 의하여, ~를 향하여, ~위에, ~에게로, ~동안, ~할때, 온전히 등)
*허비하다 - (아폴레이아; 684; 소모, 낭비, 파괴, 소멸, 등)
[누가복음 7장 39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요한복음 12장 4~6절]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중요 원어 설명
*어찌하여 - τίς(티스; 5101; 무슨, 어떤, 무엇) + διά(디아: 1223; 속격지배: ~를 통하여, 끊임없이,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대격지배: 왜, 어떤 이유로, 등)
◼︎ 가룟유다의 말과 의도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한 막내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같은 12제자 중에 하나였던 가룟 유다가 말한 문장을 바로 옆에서 들었을 것이며, 유다가 말한 그대로 정확하게 수동태 문장으로 기록했다. 원어를 가장 잘 번역했다고 인정받는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성경은 요한복음 12장 5절의 원어를 아래와 같이 번역하고 있다.
헬라어 원어: "Δια τι τουτο το μυρον δεν επωληθη τριακοσια δηναρια και εδοθη εις τους πτωχους"
⇨ "Why was not this ointment sold for three hundred pence, and given to the poor?"
요한복음 12장 5절의 헬라어 원어의 문장이 수동태이기 때문에 KJV성경의 문장도 역시 원어를 따라 수동태로 번역을 했는데, 수동태 문장은 문장의 주어로 행동을 직접 수행하는 대상(사람)을 사용하지 않는다. 원래 일반적인 능동태 문장이라면 이 문장의 경우에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람이 행동의 주체로써 문장의 주어로 사용되어야 한지만, 가룟 유다가 말한 위의 문장에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행동의 주체가 아예 나와 있지 않다.
물론, 수동태의 문장이 능동태의 목적어를 주어로, 그리고 능동태의 주어를 목적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주어가 직접 동사의 행동을 하는 주어가 아니라서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능동태↔수동태" 사이의 문법적인 부분에집중하기보다는 가룟 유다가 굳이 수동태를 사용한 이유에 대하여 집중해야 한다.
문장에서 수동태를 사용하는 이유는 바로 문장에서 언급한 행동을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대상인 주어(문장의 행동을 하는 주인공)보다는 그 행동의 목적이나 목표가 되는 대상인 목적어를 문장에서 가장 집중해야 하는 대상으로 드러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즉, 가룟유다는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은연중에 그의 문장 속에서는 이미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향유를 파는 행동을 수행해야 하는 막달라 마리아나 향유를 판 돈으로 도움을 받을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바로 당시 노동자의 일년치 연봉만큼 값비싼 향유옥합이라는 사물(돈, 재물)에 가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절; 요한복음 12장 5절은 가룟유다가 다른 열 한 제자들과는 다르게 왜 스스로 자원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절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성경절인 요한복음 12장 6절에서 사도 요한은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가룟유다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요한복음 12장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도적 - κλέπτης(클렙테스: 2812)
한 사람의 제자로써 가룟 유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도 요한이 그를 아예 "도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은 가룟 유다의 진짜 얼굴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요한은 가룟 유다와 예수님을 동시에 경험하고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 바리새인 시몬의 생각
위에도 적었지만, 그 똑같은 장면을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사도 요한과는 다르게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둥병을 낫게 해 주셔서 예수님께 감사의 의미로 이 잔치를 베풀어 드리는 이 잔치의 집 주인인 바리새인 시몬의 마음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7장 39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위의 성경절을 읽어보면, 지금 시몬은 자기를 불치병인 문둥병에서 고쳐주신 예수님께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이신 것을 믿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선지자도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시몬의 믿음이 흔들렸던 이유에 대하여 바로 같은 절의 후반부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시몬은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가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인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 여인에게 발과 머리를 내어주어 만지게 했으므로, 그 여인의 죄가 예수님을 부정하게 했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시몬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자신들만의 인간적인 기준으로 수백 개의 불필요한 행위적 율법으로 만들어내어 일반 대중 앞에 그들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한 것에 기초한 생각이었다.
시몬은 하나님의 율법의 근원이 사랑이며, 율법의 최종 목적이 용서와 자비라는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앞으로 끌려와서 사람들 앞에서 돌로 맞아 죽을 뻔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의 진정한 기능과 목적이 바로 용서라는 진리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였으며, 그녀는 물리적으로는 시몬의 잔치자리에 있었지만, 영적인 의미로는 율법의 시여자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시몬은 자기가 마리아보다 훨씬 더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잘못된 율법의 개념 때문에, 그는 지금 (그의 기준에서 엄청나게 큰 죄인인) 마리아에게 발과 머리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신성성과 선지자 되심, 및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도 무시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심으로써 그가 지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보여주셨던 것이다.
[누가복음 7장 40~4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위의 비유에서 나타난 빚진 두 사람은 시몬과 마리아를 나타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위의 비유를 통하여 시몬과 마리아 두 사람이 각각 예수님께 절대 갚을 수 없는 감사의 빚을 졌기 때문에 두 사람이 느껴야 할 의무의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몬은 마리아보다는 자기가 더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오해하여 잘못된 기준으로 마리아를 정죄하고 있는 시몬이 지금 얼마나 큰 죄를 마음 속에 저지르고 있는지를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오백 데나리온의 빚이 오십 데나리온의 빚보다 많은 것처럼 시몬의 죄가 마리아의 죄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누가복음 7장 44~47절]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당시의 유대인들이 의의 기준점으로 삼았던 의식법 중에서 정결예식에 속하는 것이 바로 손님이 집에 방문하면 발을 씻을 물을 드려서 발을 씻게 하는 것이었는데, 시몬은 정작 이 예법을 자신이 직접 귀한 손님으로 초청한 예수님께 베풀지 않았다.
즉, 바리새인 시몬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의 정신에 기초하지 않은, 그냥 유대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려고 만들어낸 온갖 잡다한 의식법과 청결예식을 다 지킨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문둥병을 치유해주신 예수님께는 그 청결예식을 수행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시몬이 그렇게 따르고 의의 기준점으로 삼았던 유대인들의 정결예식에 빗대어 그의 판단의 기준과 당시 유대의 지도자들의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인간의 이기심의 기준에 기초한 편견적이며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지적하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있어서, 제자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하시던 예수님을 조롱하며 손가락질했던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마태복음 9장 10~13절]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시작이다
예수님께서는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바리새인 시몬과 제자 유다의 생각을 모두 알고 계셨다.
시몬은 바리새인이었으며, 자신의 먼 친적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데 큰 책임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책임을 마리아가 과거의 그러한 죄들을 범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 결과로 파생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자신이 가진 믿음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즉, 자신이 가진 믿음에 기초하여 세계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책은 하나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종파가 수천개나 되며, 각각 믿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점의 가장 중심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원칙이며,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 바로 율법(십계명)이며, 하나님의 율법의 주된 목적이 죄인을 정죄하여 멸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그 잔치에 있었던 두 사람; 즉,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찾아왔지만 돈을 사랑했던 가룟 유다, 그리고 바리새인이었으며 문둥병자였지만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신 후에 예수님의 자칭 제자가 되었던 시몬은 아직 하나님의 율법의 진의와 목적을 전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잘못된 율법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그들은 자기를 부인하지도 않았으며, 오래된 유대의 관습에 기대어 하나님의 율법을 이해했기 때문에, 구약에 기록된 메시야께서 오셔야 했던 목적과 이유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그냥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향유옥합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알 수 있으며,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전심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성령이 어떻게 이끄시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곧 사랑인 것을 증명하셨다.
[로마서 5장 20절]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예수님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의 죄가 더 자세하고 뚜렷하게 보이지만,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 증명된 곳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용서의 은혜가 더 큰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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