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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③: 향유로 예수님을 발을 씻은 막달라 마리아 본문

bible study [핵심 진리]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③: 향유로 예수님을 발을 씻은 막달라 마리아

BibleMotivation 2024. 1. 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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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는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께 전심을 다 바쳐야 하지 않을까? 이제 곧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


시작하는 말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 시리즈의 지난 두번째 글에서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두 가지 믿음"과 그 믿음이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지난 연구의 결과를 잠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성경이 명시하는 두 가지 믿음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 πίστις(피스티스-설득, 신뢰, 약속, 서약)

②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 ☞ ἐπιγινώσκω(에피그노스코-이해하다, 인식하다, 인정하다, 배움으로 알다, 경험으로 알다; 엡1:17 "계발된 신령한 지식") *창세기 4장 1절의 "알다"의 히브리어 원어인 יָדַע(야다)와 같은 의미

  • 즉,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엡4:13)"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엡1:17)"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 즉, 경험으로 나의 정신과 마음 및 행동에 체화된 정확한 지식을 말하는데, 이것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인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실제적인 경험; '매일 나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나 스스로를 부인하고(나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사탄의 유혹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선택할 때에,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주시는 품성변화(시편 51편 10절)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점점 더 명확하게 알아가는 지식(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죄가 없던 태초의 아담과 하와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인 것이다.
  • 바로 이러한 경험적인 믿음이 로마서 1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설명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하는 성화의 과정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진짜 믿음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혀와서 죽음의 문턱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 앞에서 경험했던 참된 회개는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던 그녀의 인생에 명백한 '변곡점(Inflection Point)'이었다. 

하나님의 율법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무한하신 사랑은 그녀를 죽음의 문 앞에서 다시 살려내었고, 하나님의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라는 진리를 몸소 체험한 바로 그 경험은 그녀의 믿음이 지식적인 믿음에서 이제는 실천적인 믿음으로 완전히 옮겨지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이 우리 인간들에게 미치는 것을 허락하신다. 다만,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하시며, 때로는 힘든 시간을 거쳐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 뒤에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여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갈 것을 기대하시며 바라보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탄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 속에 심어둔 죄와 사망의 법; 즉, 이기심과 자기사랑에 기반을 둔 시험을 준다.

그럴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율법의 공의"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는 진리가 동시에 증명된 장소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공의롭다는 진리가 온전하게 증명된 예수님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의 죄는 더욱 더 크고 자세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그곳은 또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의 사랑이 증명된 자리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큰 용서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경험은 '자아가 죽는 경험'이며, 그곳에서 나 자신과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의 무용성(Uselessness)을 철저하게 깨닫고오직 예수님의 보혈의 피의 죄인을 사하시는 능력과 성령의 감동하심이 나와 나의 삶을 이끄실 것을 처절하게 구하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5장 20절]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막달라 마리아는 유대의 지도자들의 간계에 빠져 간음하다가 예수님 앞에 잡혀왔을 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았을 것이며, 메시야에 대한 지식적인 믿음에서 전심으로 그분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또한, 그때부터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사심 없는 봉사가 더욱 더 빛을 발하기 시작했을 것(물론, 예수님께서 그녀를 일곱 귀신에서 해방시켜 주셨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랐을 것이다)이며, 다시 그녀의 오빠와 언니가 살고 있는 베다니로 완전히 돌아오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오늘 「막달라 마리아의 두 가지 핵심사건을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믿음」 시리즈의 세번째 글에서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두번째 사건과 그 사건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그녀가 겪었던 두번째 사건이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경험적인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알아보자.


두번째 사건: 향유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발을 씻은 막달라 마리아

① 사건의 배경과 등장인물

[마태복음 26장 6절]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가복음 14장 3절]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누가복음 7장 36절]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요한복음 12장 1~2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막달라 마리아의 향유옥합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위에 옮겨적은 성경절들은 모두 그 사건의 시작을 기록한 부분이다.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복음)중에서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문둥이 되었다가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당시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였던 누가복음은 좀 더 상세하게; 그러나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각에서, 이 사건의 배경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훨씬 더 자세하게 이 사건의 시작과 배경을 알리고 있는데, 특히, 공관복음의 저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 집주인인 바리새인 시몬을 먼저 밝히고 있는 반면에,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주 방문하셔서 쉬셨던 베다니의 세 남매; 즉,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를 중심으로 본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2장 1~2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대표적인 일곱 가지 기적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마지막 유월절 기간의 전후를 중심으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볼 때, 사건의 시작을 알리면서 사도 요한이 "유월절 엿새 전에"라고 기록한 것은 요한복음의 중심주제와 기록목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베다니였으며, 문둥이 되었다가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의미의 잔치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부활시키신 이후, 유대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를 바라는 기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흘 동안이나 죽어 있다가 부활한 나사로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잔치에 대한 기대감 또한 매우 높았다.

 

또한, 사건의 이면에는 예수님에 대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의 질투와 시기의 감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는 것과 이제는 그들이 예수님을 확실히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 마가복음 14장 1~2절과 마태복음 26장 3~5절에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요한복음은 당시의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님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기적의 증거인 부활한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고 기록(요12:9~11)하는데, 유대 지도자들의 증오와 편견이 만들어낸 살인의 음모가 예루살렘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은 시몬의 잔치에 초대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는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예수님, 바리새인 시몬,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그 중에서도 가룟유다가 사건 속의 주된 인물들이며, 그밖에도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를 보려고 몰려든 유대인들이 잔치의 장소인 시몬의 집 주위에 많이 몰려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② 잔치에 모인 여러 시선들과 사건의 발단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나사로와 같이 앉으셨는데, 한편에는 흉악한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시몬이 앉았고 다른 편에는 죽음에서 살리심을 받은 나사로가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사로가 그 잔치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시중들었던 마르다(참조: 눅10:38~42)가 그곳에서 예수님을 시중드는 일을 돕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또한, 당연히 막내동생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잔치의 자리 어딘가에서 열심히 듣고 있었을 것(참조: 눅10:39)이다.

 

◼︎ 잔치의 현장에 있던 여러가지 다른 시선들: 사건의 구도

이 시몬의 잔치에 대한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발견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잔치 자리에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다른 시선들이 모여 있었다는 것이다.

 

잠시 그 순간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제 며칠만 있으면 유월절이 다가오며, 자신이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고, 시몬은 자신을 문둥병에서 고쳐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면서도 바리새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어떠할지에 대한 남모를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며칠 전에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것에 관하여 깊은 감명을 받고, 이제 곧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에 오르실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주변의 유대 백성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보이는 잔치의 한 구석에서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진심어린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가져온 향유옥합을 주머니에서 꺼내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의 원함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육적인 필요를 원하는 마음인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주님을 따르는 마음인가?

 

우리가 맞이하는 2024년은 예수님과 함께 무엇을 경험할 새해가 되어야 할 것인가?

 

2024년이 막 시작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바로 이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사건의 발단

그렇게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여러가지 서로 다른 생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잔치가 한창 진행되던 중의 어떤 한 순간에 사람들은 어디선가 풍겨오는 매우 향기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사복음서는 그 순간을 각각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마태복음 26장 7절]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가복음 14장 3절]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누가복음 7장 37~38절]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요한복음 12장 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향유옥합과 막달라 마리아

그 향기의 진원지는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자신의 일년치 월급을 털어서 매우 값비싼 향수인 순전한 나드(Nard; Spikenard; 감송) 한 근(A pound; 0.454kg)을 구입하여, 그것을 옥합에 담아 예수님을 위하여 가져왔는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이 향유를 모두 부어서 그분의 발을 씻자, 주변의 사람들; 특히, 가룟유다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막14:5; 요12:4~6)"다고 마리아를 책망하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향유옥합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 무게를 재는 중량에 있어서 300데나리온은 당시 통용되었던 은화로 약 0.125온스; 즉, 순은 3.9g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 데나리온은 당시 일용직 근무자의 하루 일당이었기 때문에(*참조- 마20:2), 300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의 1년 수입과 맞먹는 큰 금액이었다.
  • 막달라 마리아는 당시 노동자의 1년 평균 연봉에 해당하는 큰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막14:3; 요12:3)"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구약시대부터 그랬지만,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자기의 재산이나 매우 소중한 어떤 물건을 종종 금이나 은과 같은 보물과 바꾸어 자기 소유의 땅 속에 묻어두거나(마13:44~45), 집안의 깊은 장소에 보관해 두었다(눅15:8).
  • 그렇다면,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몸을 팔아 경제적 이익을 꾀하는 여자들은 어떠했겠는가? 지금 시대라면, 밖에 외출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겠지만, 몸을 파는 직업을 가진 여인들이 사회의 최하계층으로 취급을 받고 손가락질 받거나 심하면 죽임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던 당시에는 그런 여인들이 낮에 밖에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큰 위험을 당할 수 있었으며, 또한 그 여인 자신도 스스로 수치스럽고 남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의 비근한 예로는 예수님께서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셨던 야곱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전에 남편이 다섯 명 있었고, 당시에 함께 지내던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었던 여인)이 왜 태양이 가장 뜨거운 대낮에 아무도 없는 우물가에 물을 뜨러 나왔는지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 그리고, 당시의 몸을 팔던 여인들이 자신의 재산으로 값비싼 향유를 사두었던 것은 특별히,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자신의 더러움을 가리려는 목적이었으며, 둘째는 생계를 위하여 저녁에 밖에 나갈 때 좋은 향기로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것은 당시에 몸을 파는 여인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소위 재테크를 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발과 머리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

[마태복음 26장 7절]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가복음 14장 3절]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누가복음 7장 37~38절]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요한복음 12장 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하나님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사용하시는 방법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씻었다.

또한, 그녀는 예수님의 발뿐만 아니라, 그분의 머리에도 향유를 부었다.

그리고,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녀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지 못했으며, 그저 자신을 일곱 귀신의 괴롭힘과 돌로 침을 당하여 죽을 뻔한 위기에서 구해주신 예수님께 전심으로 감사의 표현을 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향유를 부었다는 사실은 바로 예수님의 몸 전체를 향유로 발랐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며,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장례를 기념한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직접 밝히신다.

 

[요한복음 12장 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마태복음 26장 12절]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속에 역사하셔서 그들이 스스로 이해하며 수행하는 봉사의 의미보다 더 큰 영적인 의미와 가르침을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자신을 온전히 비워 오직 예수님만 마음 속에 모셔서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러한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오른편 양들이며, 그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를 잘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봉사는 그들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행한 것이 아니고 오직 그들의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하게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의 봉사는 마치 매일 밥을 먹는 것과 같아서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며칠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편 염소는 자신 스스로의 봉사와 선한 행위를 내세워서 하늘나라로 가는 티켓으로 삼으려고 하는 모습을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마지막 비유인 염소의 비유에서 읽을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점을 잘 이해하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나의 영적 이기심에서 비롯된 봉사인가?

아니면, 나를 모두 비우고(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실천하게 해주시는 봉사인가? 

 

그리고, 이것은 곧 하나님의 율법(십계명; 팔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참조: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 속에 기록된 악한 종이 가지고 있던 주인에 대한 잘못된 생각)


◼︎ 깨어진 향유 옥합의 두 가지 의미

마리아는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몸을 팔아서 번 돈으로 자신의 치욕을 숨기기 위하여 값비싼 향유를 샀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당시에 몸을 파는 모든 여인들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써, 자신의 더러움을 가리는 목적과 또다시 자신의 생계를 위하여 또는 쾌락을 위하여 다른 남자를 유혹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당시의 유대 사회의 관습과 법으로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당시의 유대의 지도자들이 구분해 놓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인의 목록 속에는 세리, 병자, 장애인, 과부, 고아 등과 함께 몸을 파는 창기도 역시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① 향유 옥합을 깬 첫번째 의미

마리아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면서, 그리고 자기자신마저도 스스로를 정죄하면서 벌어들인 전 재산을 모두 다 예수님께 드렸다. 그리고, 이 사실의 깊은 의미에 관하여 마리아 자신은 사실 잘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그 부분(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그분의 몸의 보전을 준비하기 위한 것)을 설명해 주셨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께 칭찬받은 몇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특별히 주님께서는 두 여인을 칭찬하셨다, 그 첫째 여인이 바로 향유 옥합을 깬 막달라 마리아였으며, 또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이었던 두 렙돈을 헌금으로 드린 가난한 과부였다.

 

[마가복음 12장 43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가난한 과부에 드린 두 렙돈에 대한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하늘에서 측정하는 헌금"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헌금을 한 사람의 마음 상태와 그 속의 진심을 보신다. 하나님께 그 사람의 마음 전부를 드렸는지 아닌지를 보시는 것이다.

 

[사무엘상 16장 7절]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But the Lord looketh on the heart

 

마리아는 자기자신을 모두 무너뜨려 버렸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

 

그녀는 이제 더이상 과거의 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과 그 결심에 대한 실천으로 자신이 몸을 팔아서 번 돈으로 산 향유옥합을 깨었다.

 

마리아는 지금까지 자신의 더러움을 가려주었던 그 향유를 버리고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가리움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모든 마음과 소유를 다 바친 믿음은 결국 아무도 예수님을 위하여 발을 씻기지 않았지만, 오직 그녀만 예수님의 발을 씻김으로써 예수님께서 바로 그 잔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죄 문제 해결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귀한 대속의 희생과 그분의 사후 무덤에서 그분의 몸이 온전하게 보전되는 것까지도 의미하는 큰 영적 의미의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의미이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

많이 용서 받은 자는 많이 용서하고, 많이 충성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은 더 많이 용서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용서받은 사실을 깊이 감사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무한하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평안과 은혜 속에 살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을 찾으시며, 그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단 한 사람; 이방인이었던 단 한 사람만 에수님께 다시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다.

 

[누가복음 17장 17~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2024년을 시작하는 이 시간에 우리에게 동일하게 질문하고 계신다.

 

② 향유 옥합을 깬 두번째 의미

두번째 의미는 향유옥합을 깬 마리아의 행동에서 가진 몇 가지 개인적인 의문점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질문들은 아래와 같다.

  • 왜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하게 예수님의 발을 씻었을 수도 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미리 향유를 준비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을까?
  • 왜 그녀는 자신의 과거의 죄를 다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녀를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앞에서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자신을 다 드러내놓고 예수님의 발을 씻었을까?
  • 마리아에게는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용기가 생겼을까? 어떻게 그녀는 자신의 체면, 부끄러움, 자존심, 등을 모두 다 버리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모든 의로운 것들은 다 하늘로서 우리에게 임하시며,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조차도 모두 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것이라는 진리에 기초하여, 마리아의 이러한 행동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이끌고 계셨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야고보서 1장 17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마태복음 16장 16~17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막달라 마리아가 개인적으로 용서를 경험하고, 일곱 귀신에서 놓임받았으며, 몸을 파는 죄에서 해방되었지만, 공식적으로 남들 앞에서 앞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변화와 새롭게 되었다는 증거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앞으로 베다니에서, 또한 유대 전역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당시의 대중들에게 그녀의 죄사함과 깨끗함을 인정받을 만한 사건이 필요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회심한 이후의 그녀의 모든 인생까지도 생각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신실한 백성들에게 그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하시며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이 막달라 마리아의 향유옥합 사건을 통하여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오늘 우리 모두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분의 보혈의 죄사함을 믿으면 어떤 범죄나 그 어떤 흉악한 죄라도 다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계속하여 매일마다 성경 말씀의 기준; 즉,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에 자신을 비추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스스로 무릎 꿇어 매순간마다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모두 드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구원해 내시며, 하늘의 능력으로 이끄실 것이다!

 

 

2024년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말씀을 정직하게 연구하며 실천하기를 전심으로 원하는 모든 분들께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삶의 모든 부분을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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