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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숨겨진 핵심 본문

parables of Jesus [예수님의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숨겨진 핵심

BibleMotivation 2022. 12. 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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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성경절 - 누가복음 10장 25~37절

 

1. 시작하는 말

예수님께서는 3년 반의 공생애 동안 수없이 많은 비유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하여 그분의 참된 뜻을 배우며 닮아가야 하는데, 너무나도 많은 해석들이 존재하며, 때로는 터무니없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서 그 비유의 속에 담겨있는 참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연구를 통하여 예수님의 비유를 하나씩 읽고, 성경의 모든 말씀과 비교하여, 과연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에베소서 5장 17절)

 

 


1.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시작과 끝은 "영생"이다.

 

많은 사람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그저 “참된 이웃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비유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지만, 사실, 이 비유는 "자신의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얻게 되는 영생"에 관한 비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 속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숨겨두셨는데, 바로 참된 예배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바로 그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문맥을 따라 읽어봅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어떤 율법 교사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 10장 25~28절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1~4계명)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5~10계명)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렇게 예수님의 한 치의 오류도 없는 명대답을 들은 이 율법교사는 아마도 자신이 스스로 말한 대답을 평소에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을 더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다음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0장 29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성경을 읽을 때는, 자기가 원하는 성경절 하나만 딱 떼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냥 막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앞뒤의 문맥을 보면서 읽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의 문맥 상, 예수님께서는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던진 하나의 질문(어떻게 영생을 얻는가?)"의 마지막 결론으로써 이 비유(참된 이웃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바로 "어떻게 하면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최종적인 대답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인한 구원을 믿고 그리스도인 믿음을 가지게 되었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영생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씀이 이 비유의 핵심인 것이죠.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보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없다고 생각되어 성경절을 모두 적지는 않겠으니, 시간이 날 때 다시 한 번 조용히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누가복음 10장 25~37절)

 

 

 

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속에 드러난 실제적인 핵심은 "참된 예배"이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여리고

이 비유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1) 구약성경에서도 여러번 등장한 이 "여리고"라는 도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의 지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거쳐가야 했던 첫 관문이었습니다(여호수아 2장, 6장).

  - 여리고 성은 당시에 매우 견고한 성이었고, 그래서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 정복하지 못할 도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수6:1~5)"를 앞세워 7일동안 성 주위를 따라 행진함으로 함락시킨 성이죠.

  - 또한,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숨겨주고 나중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유일한 2명의 여성 중에 한 명이 된 기생 라합이 바로 이 여리고 성에 살고 있었습니다.(마1:5)

 

(2)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던 구약시대부터 예수님 당시까지도 이 여리고라는 도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각 지방에서 성전에 봉사를 하러 예루살렘으로 오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서 가깝고 부유한 도시였던 이 여리고 성에서 지냈던 것입니다.

 

 

● 둘째, 등장인물

이 비유 속의 등장인물은 총 네 사람이며, 등장한 순서대로 그들의 행동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강도당하고 죽게 된 사람

  -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을 이용했던 사실을 보아, 유대인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2) 제사장

  - 예수님은 이 강도당하고 죽게 된 사람을 도와줄 인물로 제일 먼저 제사장을 등장시키십니다.

  - 당시 제사장들은 24반차로 나누어서 일년에 2주씩 성전에 가서 봉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봉사하는 주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죠.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면서도 부유한 도시였던 여리고에 머물기를 선호했던 것입니다.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여리고 성은 약 5000명 정도의 제사장들이 거주했던 부유한 도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첫 등장인물로 제사장을 등장시키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죠. 그러나, 제사장은 강도당하여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눅10:31)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3) 레위인

  - 예수님께서 두번째 지나가는 인물로 등장시키신 레위인도 역시 제사장과 함께 성전에서 봉사하는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도 역시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눅10:32).

 

  - 당시의 가장 영적으로 존경받던 지도자인 제사장도,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인도 모두 이 강도당해 죽어가는 남자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제 청중들은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에 등장시킬 다음 사람을 궁금해하며 머리속으로 누구일지 상상해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음 등장인물로 청중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말씀하셨습니다.

 

(4) 사마리아인

  - 예수님께서는 청중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한 부류의 사람: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키십니다.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 구약시대에도 존재했었지만, 1세기 말에 확정된 18개의 유대인의 기도문 중에서 12번째 기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한 순간에 멸망당하게 하시고, 저들의 이름을 생명록에서 제거해 주시옵소서"

 

  -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위와 같은 내용을 기도문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을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고 저주했습니다.

  - 그리고, 유대인이 이렇게까지 경멸하는 부류의 사람이 등장하여, 거룩한 제사장과 레위인마저 하지 않은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유대의 청중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 셋째, 등장인물의 행동들

(1)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데, 바로 사마리아인은 이 강도당한 사람을 "불쌍히 여겼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누가복음 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 복음서에서 누군가를 "불쌍히 여겼다"는 표현은 거의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래의 성경절은 그것의 몇 가지 예시입니다.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누가복음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 즉,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강도당한 사람을 바라보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으로부터 이 사마리아인이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2)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기름과 포도주"입니다.

누가복음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 당시, 기름과 포도주는 상처의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흔히 사용했던 기름은 올리브 열매의 기름이며, 환부를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상처를 소독해주기 위하여 포도주를 사용했던 것이죠.

 

  - 사실, 이 "기름과 포도주"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으며, 매우 익숙한 것들이었습니다.

  - 왜냐하면, 기름은 소제를 드릴 때 제사장이 사용했던 제사의 재료였고, 포도주도 역시 초막절 때 물과 함께 번제단에 붓는 제사의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장 1절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위기 23장 13절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 또한, 기름과 포도주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역대하 31장 5절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 즉, 기름과 포도주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했던 재료들이자,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드렸던 헌물이었던 것입니다.

 

(3) 그러나, 이 비유 속의 제사장과 레위인은 "기름과 포도주"를 예배(제사)를 드릴 때는 사용할 줄 알았지만, 실제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남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 사실는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곧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삶과 예배가 연결되지 못한 그 당시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명백하게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 당시의 종교 지도자라고 추앙받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하여 그들이 보기에 완벽한 제사를 드렸지만,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리고로 가는 도중에 강도만난 사람을 바로 앞에서 보고도 그를 도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불쌍한 마음을 가지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갔던 것이죠.

 

  -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 넷째, 지금 나의 신앙 상태는?

(1) 이러한 신앙의 상태가 바로 요한계시록 3장에 기록된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점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17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2) 예수님 당시의 숙박비는 12분의 1 데나리온이었으며, 2데나리온은 24일 동안 여관에 머물수 있는 숙박비였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5절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 위의 성경절에 기록된 대로 사실상 너무나도 큰 친절을 베푼 이 사마리아인은 혹시 돈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값겠다고까지 말합니다.

  - 여기서도 하나의 중요한 단서 "내가 값겠다"는 부분입니다.

  -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유대인 사회는 혈연으로 묶여 있었죠. 그래서, 가족이나 친척 중에서 어느 사람이 빚을 지고 갚을 능력이 없을 때에는 그를 대신하여 가족이나 친척들이 대신 갚아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법으로 정해전 운명 공동체의 법이었으며, 구약성경의 "룻기"는 이 제도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 즉, 위에 옮겨 적은 누가복음 10장 35절의 말씀은 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바로 이러한 운명 공동체로 연결된 가족처럼 이 강도당한 사람을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강도당한 사람이 자신의 가족도 아니었고, 또한, 사마리아인은 더더욱 아니었음에도 말입니다.)

 

 


3. 참된 예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결론적인 대답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참된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그저 교회에 가서 예배를 충실하게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까?

 

아니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국제사회가 혼란스럽고 이웃이 병들어가는 이 순간에 나의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필요를 알아보며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까?

 

혹시, 우리는 그저 '근사한 예배', '감동을 주는 멋진 음악',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만한 설교' 등을 듣기를 더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받을 그리스도인은 균형진 신앙, 그리고 실천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첫째, 말씀연구

둘째, 성령을 구하는 기도와 회개기도

셋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평생을 우리에게 모본으로 제시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이루기를 원하시는 명백한 증거이자 승리의 표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에서,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본과 희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예배만을 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구원, 그리고 영생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영적으로는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했던 것이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저의 신앙생활과 믿음은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은 잘 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의 이웃들에게 무릎 꿇고 봉사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기피하게 되지는 않는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예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말씀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멀리, 다른 나라로 해외 선교여행을 갈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와 문화 속에서, 나의 가정에서, 나의 동네에서, 나의 회사에서, 나의 교회 안에서 내가 어떤 말과 어떤 행실로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삶이 예배요, 예배가 삶이다".

 

말씀에 대한 개인적인 감동과 판단은 오로지 여러분과 저의 몫이며, 말씀에 대한 실천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말씀하실 때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드리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 15장 22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 3장 18~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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