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엠마오 가는 길: 바른 성경연구

열 처녀의 비유 - 4 (열 처녀의 신원조회 + 성경의 중심주제) 본문

parables of Jesus [예수님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 - 4 (열 처녀의 신원조회 + 성경의 중심주제)

BibleMotivation 2023. 3. 8. 10:11
728x90
728x90

여분의 기름을 가진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기름이 없었던 미련한 다섯 처녀

 

 


시작하는 말

 

지난 "열 처녀의 비유 - 3"에서는 "왜 이 비유가 중요한가?"를 두 가지 이유로 살펴보았다.

지난 연구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이 비유는 우리에게 선과 악의 싸움에서 누가 주인공인지를 알려준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에서 우리 인간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알려준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성부-성자-성령)께서 이 우주적인 전쟁에서의 주인공이시며,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 즉, 혼인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둘째, 주기도문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되고 우리에게 소개되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대표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하여 확인하였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때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일들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교회 안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이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인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20장과 21장에 기록된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날 일; 즉,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의 상황을; 특히,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긴다고 주장하는 교회 속에서 일어나게 될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함축해서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 바로 "열 처녀의 비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유를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오늘은 이 비유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들인 열 처녀에 대하여 성경 속에서 그들의 신원을 밝힐 것이다.

 

 


 

 

 

둘째, 열 처녀의 공통점

 

이 열 명의 처녀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마태복음 25장 1절은 기록한다.

첫째는 모두 "등을 들"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그들 모두 신랑을 기다리며 졸았다는 것이고, 셋째는 모두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는 것이다.

 

(1) 먼저, 이 "등"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상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에 어떤 이견도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등"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25장 1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시편 119편 10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시편 119편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이요 내 길에 이니이다

*시편 119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규례, 주의 법도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재진술하고 있으며, 이 개념(하나님의 율법 = 말씀 = 법도 = 규례)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반복된다.

 

"등", "빛" 또는 "등불"이 "하나님을 말씀", 또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성경절들은 아래과 같다.

 

[사무엘하 22장 29절] ☞ 여호와 하나님 = 등불 = 흑암을 밝히심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요한복음 1장 1~14절] ☞ 말씀 = 창조주 = 하나님 = 생명 = 빛 =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 = 예수 그리스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이 아니요 이 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마태복음 5장 15~16절] ☞ 등불 = 하나님의 말씀(참 빛=등불=그리스도)을 듣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성도) (*집안 모든 사람에게 = 내가 속한 자리, 위치, 또는 주거지의 이웃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2) 또한, 열 처녀들은 모두 다 신랑을 기다리다가 졸았다.

 

[마태복음 25장 5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사실, 본문의 말씀은 그들이 모두 졸았고, 또한 잤다고 기록한다.

① "졸다"의 헬라어 원어는 "뉘스타조(νυστάζω)"로써, "고개를 끄덕이다, 졸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② "자다"의 헬라어 원어는 "캬듀도(καθεύδω)"로써, "자다"의 의미이다.

 

즉, 문자적으로 열 처녀들은 모두 다 졸았고, 또한 잠을 잤다.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졸다", "잠을 자다"라는 표현은 좋은 표현이 아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죽다"라는 의미로써 잠을 말씀하셨다. 이는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기 위하여 가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드러난다.

 

[요한복음 11장 11절, 14절]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둘째,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42절의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열 처녀가 다 "졸며 잤(마태복음 25장 5절)다"는 표현의 의미를 알려주신다. 

 

열 처녀가 모두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는 표현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의 반대가 되는 표현이며, 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자 모두 다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물론이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믿음과 신앙이 모두 잠을 잘 때; 즉 신앙과 믿음의 어두운 "밤중(마태복음 25장 6절)"이 곧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로마서 13장 11~12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3) 그리고, 열 명의 처녀들은 밤중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를 듣고 모두 다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

 

[마태복음 25장 6~7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재림 바로 직전에 있을 교회의 경험을 설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밤중에"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마지막 때에 이 세상을 뒤덮을 "영적인 암흑"을 미리 말씀하셨다.

그리고,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두 종류의 처녀는 주님을 기다린다고 자칭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또한, 그들을 "처녀"라고 부른 것은 저희가 순결한 신앙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비유 가운데 등장하는 열 명의 처녀는 모두 다 신랑을 맞기 위하여 나아갔으며, 처음 얼마 동안은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볼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전에 사는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이 다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들었거나 남에게 전하고 있으며그분이 오실 것을 확신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지금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 때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있고, 그렇지 못할 미련한 다섯 처녀도 있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셋째,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마태복음 24장과 25장의 해석의 기준)

 

전에 마태복음 24장 37절의 "노아의 때"에 관하여 연구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마태복음 24장의 중심에는 숨겨진 주제가 있는데,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24장을 더 풀어서 설명하시는 비유인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도 역시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존재하며, 그 기준이 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성경의 예언과 예수님의 비유를 포함한 모든 성경말씀을 해설하거나 해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할 때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 비교해서도 가장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성경해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 율법 = 십계명 = 사랑 = 생명 = 빛 = 길)

 

마태복음 24장의 첫번째 부분, 두번째 부분, 세번째 부분, 네 번째 부분 등 모든 부분의 끝이나 처음 성경절에는 다 "하나님의 법"을 암시하거나 지칭하는 용어가 등장한다. 특히, "노아의 방주"는 성경의 구조와 내용의 전개상 "하나님의 율법"과 동일한 역할과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을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시대에 이 세상의, 또한 교회 안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어떤 기준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지 못할 것인지를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아래는 모두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1) 마태복음 24장 12절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 "사랑"은 하나님의 품성의 기초이며,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어이고, 하나님의 율법의 내용이다. 그와 반대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십계명"을 지키게 되며, 그것을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사탄의 목표는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어서 불법을 행하도록;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 마태복음24장 15절 ->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 "멸망의 가증한 것"은 누가복음 21장 20절에 따르면, "군대"이며, 이것은 곧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멸망하게 만든(A.D.70년) 로마군대를 말한다. 그리고 다니엘서 2장과 7장에 따르면, 다니엘이 꿈 속에 본 네 마리의 짐승들 중에서 마지막 짐승; 즉, 넷째 나라(단7:23)는 로마제국을 의미하는데, 다니엘서 7장 23절부터 죽 읽어보면, 25절에서는 이 로마제국에서 나온 작은 뿔(로마교회)이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고 기록함으로써, 로마교회; 즉, 현재의 가톨릭교회가 "하나님의 법"을 고쳤다는 것을 미리 예언하셨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참고로, 가톨릭교회; 즉, 천주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직접 써주신 "십계명"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고치고 바꾸어서 원래의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십계명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에서 성경말씀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3) 마태복음 24장 32절 ->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참조성경절: 시편 1편 전체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중략)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 예수님께서는 꽤 여러 번 이 "무화과 나무"를 사용하여 비유 속에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여름이 가까운 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즉, "시간과 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예수님 재림의 시기와 때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경 시편 1편의 중심 주제는 곧 "하나님의 율법"인데, 여기에서도 역시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 즉,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성도는 시기와 때를 따라 준비하며 그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참조할 글 - 히브리 문학의 특징으로 다시 읽은 시편 1편

 

히브리 문학의 특징을 통해 다시 읽는 시편 1편 (부제: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 대한 두 가지 태도

#히브리문학의특징으로읽는시편1편 #시편1편 #팔복 #마태복음5장 #시편1편에숨겨진의미 #시편1편강해 #다시...

blog.naver.com

 

 

(4) 마태복음 24장 37절 ->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비유의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명확하게 그 두 부류가 어떤 부류이며, 또한 이 두 부류 각각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려주시는데, 그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 즉, 하나님을 정말 사랑해서 구원받을 성도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 사건"인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방주에 탄 사람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 여덟 명"과, "방주에 타지 못한 사람들"을 마태복음 24장 37절~39절에서 "노아의 때"라고 언급하심으로써 간접적으로 비교해 볼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 "노아의 때"에 관하여 연구한 글들을 다음에 자세히 적을 예정이지만,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과 같다.

 

첫째, 노아의 방주(Ark)와 하나님의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Ark)는 그 단어가 영어로도, 히브리어로도 헬라어로도 똑같다

 

둘째, 노아의 방주와 법궤는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민족)에게 주셨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나무로 만들어졌다. 

 

셋째, 노아의 방주 속에 탄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방주 밖에 머물렀던 사람들; 즉,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겠다는 여러가지 징조와 사건들을 경험했음에도 스스로 선택하여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멸망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도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성도)은 하나님의 법(십계명)을 지킨다. 반대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또한, 법은 그 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처벌한다. 하나님의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넷째, 하나님의 율법은 곧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된다. 아담과 하와(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즉,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선물해 주신 의로운 영원한 삶에서 멀어져, 결국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들이 다 죽음에 굴복하게 된 것처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죽기까지 실천하시고 지키심으로 다시 온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때의 판단 기준도 역시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절대 온전하게 지키지 못한다. 하지만, 두려워 할 것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것을 모두 지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며, 또한 우리가 지킬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장 15~16절)

 

다섯째, 구약 성경의 구조와 신약 성경의 구조, 및 각각의 내용이 모두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진다. 또한, 성경책은 첫째 아담이 실패한 그 과정 그대로 다시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승리하시는 내용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네 가지의 노아의 방주와 하나님의 율법의 동일성이 정확하게 딱 들어맞는다.

 

 

노아의 때와 인자의 임하실 때의 비교 도표
성경책은 첫째 아담이 실패한 그대로 다시 승리하시는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다.

 

 

To be continued...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