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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비유 - part 03 탕자의 회개와 참된 예배, 그리고 팔복 본문

parables of Jesus [예수님의 비유]

탕자의 비유 - part 03 탕자의 회개와 참된 예배, 그리고 팔복

BibleMotivation 2023. 8. 3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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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회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시작이며, 팔복은 그러한 회개와 품성의 변화에 관한 십계명; 즉, 하나님의 율법의 원리를 설명한다.


시작하는 말

지난 「탕자의 비유」 연구 시리즈의 두번째 글에서는 이 비유의 주제; 즉, 가시적인 주제와 숨겨진 주제 두 가지를 살펴보았다. 

 

● 지난 글의 내용을 잠시 요약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탕자의 비유를 포함하여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세 가지 비유의 전체적인 주제는 모두 "하나님을 떠나 곁길로 나간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동정(Compassion)이 넘치는 사랑(ἀγάπη: 아가페)"이다.

 

② 탕자의 비유의 두번째 주제; 즉, 숨겨진 주제 중에서 첫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다. 이것은 구약성경부터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전반적인 흐름과 동일한 것으로써, 성경에 등장하는 두 가지 예언(언약)의 종류인 '묵시적 예언'과 '일반적 예언'중에서 "일반적 예언"의 범주에 속해 있다. 이 블로그를 통하여 여러번 언급했지만, "일반적 예언"의 특징은 "조건성"; 즉, '하나님의 명령과 복에 대한 사람의 순종 혹은 불순종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점이다.

 

③ 또한,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돌이키기로 결심하고 행동한 것과 마태복음 24장과 25장 및 여러 다른 예수님의 비유들에서 언급되는 "악한 종", 또는 "악한 아들"이 그들의 주인과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각과 반응이 반대인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렇게 하나님의 똑같은 사랑을 경험하고도 반응이 엇갈리는 이유는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첫번째 비유인 "열 처녀의 비유"의 주제와 연결되며, 결과적으로는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들과 모두 다 연결된다. 

 

(*즉, 성령하나님의 감화하심에 반응하여 자신을 모두 버리고; 즉, 자아를 포기하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시각이 왜 다른지에 대한 결론적인 대답인 것이다. 그리스도인 성화의 과정에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수적이며, 이 부분은 차후에 계속 「열 처녀의 비유 연구」 시리즈를 통하여 나눌 것이다.)

 

④ 마지막으로, 탕자의 비유의 숨겨진 두번째 주제는 바로 "참된 회개"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참된 회개"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가 두려워서 그 두려움 때문에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무능함과 자신 속에 내제되어 있는 '죄' 자체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여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 그리고, 참된 회개 이후에, 그리스도인에게 뒤따르는  성화의 과정;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품성변화의 과정을 짧게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성경이 기록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과정]

  •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선택하고, 믿고, 침례받으며, 성령을 선물로 받음(행2:37~38)
  • 말씀 연구(예수님의 품성과 십자가를 연구함: 명확한 기준점 심겨짐; 시119:105; 롬7:7; 갈3:23~24; 눅16:31)
  • 하나님을 따르기로 동의(자아포기; 마16:24)
  • 시험이 올 때마다(매순간), 하나님을 선택하기로 결심(의지를 하나님께 드림, 자아포기)
  •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함(자아포기; 눅11:13; 마7:11)
  • 성령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용기를 주심(요14:15~16,25~26; 요15:26)
  •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음(히4:12)
  • 내 마음에 세상을 쫒는 마음이 사라지고, 새 마음을 주심(품성변화; 시편 51편 전체)
  •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감(성화: 매일 반복; 롬1:2,16~17; 엡4:13)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때에 있을 물리적인 징조들과 영적인 징조들 및 마지막 때에 있게 될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에 연달아서 마태복음 25장에서 세 가지 비유를 주셨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신 세 가지 비유들은 마태복음 24장의 후반부에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를 언급하신 이후에 계속 말씀하셨던 "마지막 때의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신 비유들이며, 그 비유들 중에서 첫번째는 바로 "열 처녀의 비유"이다.

 

열 처녀의 비유에 등장하는 두 부류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이 없었는데, 이 "기름"은 성경에서 "성령하나님"으로 표상(눅4:18; 행10:38; 고후1:21 등 다수)되어 있다.

 

*성경책에서 "기름이 성령하나님을 표상"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링크의 글들을 읽으시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할 때,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원칙]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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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연구할 때,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원칙]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의 비

시작하는 말 지난 글에서는 어느 신천지(새하늘새땅예수교증거장막성전)를 믿는 분이 마태복음 25장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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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름; 즉, "성령"이 없는..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역사가 마음에 임하시기를 거절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바로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표상한다. 그들은 반석되시는 예수님 위에 떨어져 저희의 옛 성질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들은 주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받았지만, 그 말씀의 원칙을 실천하지는 않은 그리스도인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력은 그들에게 순간적일 뿐이었던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 역사하시게 되고, 이 성령의 역사를 당사자가 갈망하고 동의하게 될 때, 그의 안에는 새로운 품성이 심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위에 적은 것처럼, 예수님의 품성을 닮은 변화가 그 사람 안에 위의 과정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참고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에게나 선물로 성령을 주시지만, 그 성령의 부르심과 감화하심에 순종하여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려서 자기를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개인의 선택의 문제임)

 

또한, 예수님께서는 여러 비유들을 통하여 천국을 설명하시면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사람들과 천국의 특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중에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는 예수님을 닮은 품성, 그리고 그 품성의 변화가 성령의 감화와 도우심을 통해서만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야 하는 좋은 마음밭을 일구는 것에 관한 비유인 것이다.

 

● 오늘은 「탕자의 비유」연구 시리즈의 세번째 글로써, 탕자의 회개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이 비유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볼 것이다.


탕자의 회개가 의미하는 것: 참된 예배와 마음(품성)의 변화

● 탕자의 회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마음을 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현재 처해 있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바로 그가 직접 경험했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했고, 또한 아버지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탕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둘째 아들이 자신을 죽었다고 취급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을 때도 그에게 재산을 주었고, 탕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해주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을 향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고 집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망나니 둘째 아들인 탕자는 마침내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아무 것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곁을 떠나서는, 결국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아무런 좋은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유롭기 위하여 아버지의 곁을 떠났지만, 그가 최종적으로 깨닫게 된 진리는.. 아버지의 인도하심 속에서만 자신의 자유가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자신 스스로는 어떤 의로운 것도, 어떤 좋은 것도, 어떤 밝은 미래도 만들어 낼 수 없었고, 많은 돈으로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리스도인; 아니, 전 인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창조주의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다시 말씀하신다.

 

[요한게시록 3장 18~19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예배의 목적, 그리고 의(Righteousness)와 죄(Sin, Sinfulness)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목적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그 예배의 장소와 시간 속에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다시 한 번 더 인정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마음과 의지를 드려서 그분께 모든 영광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순종하며,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표시이다. 그리고, 그 예배 속에는 사람의 이기심(사람의 공로)은 절대 포함될 수도 없고, 포함되어서도 안된다. 사람의 이기심이 포함되는 순간 그 예배는 더이상 예배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죄는; 즉, 사탄은 전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웠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고의 천사이며 피조물이었던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서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써 온 우주 앞에 예배를 받는 것이었다(겔28:13~15; 사14:12~14).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면서도 자기자신이 온 우주 앞에 경배와 찬양과 예배를 받는 위치에 오르기를 갈망한다. 즉, 자기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아니..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알고 있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 없는 자(피조물)가 생명이 있는 분(창조주 하나님)처럼 행동하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 문제의 결과가 바로 "죽음(사망)"이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 의(Righteousness)는 매순간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지만, 죄(Sin, Sinfulness)는 매순간 자신을 높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인은 시련이 닥쳐올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가지만, 악인은 먼저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여 시련에 대한 어떤 외적인 요인을 찾아 해결하려고 하거나, 또는 기도는 하겠지만 단지 형식적으로 하고 실제로는 자신의 능력과 외적인 요인들을 더 의지한다.

 

● 탕자의 회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시작이다.

탕자의 회개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진정한 회개의 원칙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요4:23~26)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인을 참된 예배로 이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말하지만, 사실,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라고 인정하는 것과 성령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거룩한 것은 하늘로써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약1:17; 마16:15~17)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예배하게 만드시는 것이 성경적으로 훨씬 더 옳은 말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예배하게 하신 그 정결한 마음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일 뿐이다.

 

[야고보서 1장 17절]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마태복음 16장 15~17절]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자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이미 경험해 보았던 이 탕자는 이제 아버지의 사랑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아버지의 곁으로 종의 모습으로라도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이켰다. 그리고 이제 그의 삶은 더이상 예전의 방탕하던 삶이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탕자의 회개는 오직 하늘에서 주신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산 위에서 선포하신 십계명의 해설인 "팔복"은 진정한 회개 이후의 사람의 변화의 과정과 회개와 회심에 필요한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다.

 


회개와 재창조의 필수 요소들과 성화를 설명하는 팔복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과 「팔복」을 통하여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의(Righteousness)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시하신 뜻에 마음과 생애를 일치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아담과 하와(이브)의 불순종은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 인류를 단절시켰다.

 

사람은 원래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존재이며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사는 존재인데, 하나님의 피조물이면서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을 뿐인 존재인 천사들(참조-히2:7)의 우두머리였던 루스벨(사탄의 옛날 이름)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탄의 말을 듣게 되어, 사탄이 자기 스스로를 창조주 하나님의 위치에 두려고 하는 것과 똑같은 마음(이기심;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사람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의(Righteousness)로움 그 자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당연히 끊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빛은 어둠과 함께 할 수 없고, 어두움은 빛을 이해하지 못한다.(참조-요1:5)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마음 한 구석에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영(성령)"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셔서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셨던 것(요14:16)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을 당시에,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산 존재가 되게 하셨다.(창2:7)

 

그런데, 창세기 2장 7절에서 명시하는 "생기"는 히브리어 원어로 "נשמת חיים(네솨마 하임)"이며, 여기에 사용된 "네솨마"라는 단어는 성령(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신)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인 "רוּחַ(루아흐)"와 동일한 의미의 단어이며, 헬라어로는 "πνεῦμα,(프뉴마)"; 그러니까, 성령 또는 바람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이다.

 

또한,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창조의 기본적인 요소로써 물과 성령을 언급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 5절에 재창조(구원)의 구성요소로써 "물과 성령"을 언급하셨고, 요한일서 5장 5절~8절에서도 역시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재창조(구원)의 필수 요소로써 "예수님의 보혈과 물, 그리고 성령"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창조, 또는 재창조의 기본적인 요소에 "물과 성령"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음 한 구석에 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성령)"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7~19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요한복음 20장 22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팔복은 십계명의 해설이며, 십계명이 두 부분(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같이, 팔복의 첫번째 네 가지 복은 "하나님을 사랑"했을 때 사람에게 발생하는 현상이며, 팔복의 두번째 네 가지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마음에 첫번째 네 가지 복을 경험한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생기는 마음의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변화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자신이 더욱 더 죄인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더 갈급하게 되어, 마침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자신들의 위치를 명확하게 이해하며, 자신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깨닫고 있다.

 

죄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매순간 유지할 때에만 의로워질 수 있으며,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에만 참된 경건이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향상시키고 삶을 영적으로 고상하게 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신앙의 외적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내적 순결함과 일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에 요구되는 표면적 의식들까지도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의 신앙과 같이 무가치한 예배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게 되면, 그 결과로써 생기는 마음이 바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게 되며, 마음이 청결해 지며, 평화를 불러오게 되어, 마침내 의를 위하여 죽기까지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팔복의 두번째 네 가지 복들이 바로 그런 마음임을 분명하게 밝히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오직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마음의 반응이며, 이 마음은 곧 십계명의 두번째 부분인 "이웃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참된 품성의 변화는 밖에서 형성되어 장식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밖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다른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한다면 의의 원칙이 우리 마음에 먼저 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신앙을 공언함으로 신앙의 이론을 선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리의 말씀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확신시키는 것은 실제적인 경건이다. 언행이 일치하는 생애, 거룩한 대화, 변하지 않는 성실성, 능동적이고 동정심이 많은 정신, 경건한 삶의 모본,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매개체가 된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도서 2장 11~14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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