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엠마오 가는 길: 바른 성경연구

탕자의 비유 - part 04 탕자의 회개와 베드로의 고백 본문

parables of Jesus [예수님의 비유]

탕자의 비유 - part 04 탕자의 회개와 베드로의 고백

BibleMotivation 2023. 9. 13. 08:49
728x90
728x90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고백은 탕자의 회개와 동일한 과정과 내용을 담고 있다.


시작하는 말

지난 「탕자의 비유」 연구 시리즈의 세번째 글에서는 이 비유 속에 나타난 탕자의 회개가 어떻게 참된 예배와 관련이 있으며, 또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여 생기는 참된 회개와 재창조(구원)의 과정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풀어 설명하신 마태복음 5장의 팔복 속에 드러나 있음을 살펴보았다.

 

● 지난 글의 내용을 잠시 요약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탕자의 회개의 근원은 아버지의 사랑이었으며, 그의 아버지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왔고, 그것이 바로 참된 회개의 기초이다.

 

② 참된 회개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며, 죄의 시초인 사탄이 두렵거나 또는 죄의 결과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죄 자체의 심각성, 그리고 우리의 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아서 돌아가시게 했다는 그 충격적인 사실 자체를 슬퍼하여 우리의 모든 의지와 생각을 오직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것이다.

  • 이러한 참된 회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증명된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이 마음밭에 심겨지고,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 우리가 그러한 성령의 역사에 동의하고 우리의 의지를 모두 다 드릴 때에 가능한 것이다. 
  • 그리고, 그 결과로써,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본을 어떤 이기심도 없이 실천하게 되며, 우리의 모난 품성이 깨어지고,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 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성령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본을 따라서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③ 참된 회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시작이다. 예배의 목적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람을 구분하는 것"; 즉, "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순종하며,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표시"인데, 이 예배 속에는 사람의 공로나 수고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의"는 매순간 하나님을 높이지만, "죄"는 매순간 자기자신을 높인다.

 

 이러한 참된 회개와 성화의 과정 속에서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순종의 기준점인 십계명을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실천하게 된다.

  •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믿음이 마음 속에 심겨지고 자라나게 되면,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게 되고, 그 결과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즉,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거하시는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실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오직,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너희(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마태복음 5장 48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팔복"을 선포하셨는데, 팔복은 십계명의 해설이며, 예수님께서는 이 "팔복"의 선포를 통하여, 아담의 타락 이후로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이기심을 가지고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령의 감화와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며,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서 이웃에게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셨다.

팔복은 십게명의 해설이며,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설명해 주신 것이다.

 

 

● 오늘은 「탕자의 비유」연구 시리즈의 네번째 글로써, "탕자의 회개"와 "베드로의 고백"을 비교해 보고, 베드로의 참된 회개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변화(품성의 변화)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베드로를 다시 일으키신 예수님

● 수제자 베드로와 그의 믿음

 

① 성격과 습관이 모두 다른 열 두 제자들

  •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운 제자로 부르신 열두 명의 제자들은 습관과 성격이 서로 매우 달랐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과 특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 모두가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하던 세리였으나, 이해가 빠르고 글솜씨가 좋았던 레위 마태

- 맹렬한 열심 당원(셀롯당)이며, 로마의 권위에 대한 증오를 가진 시몬

- 도량이 있으나 침착성이 없고 충동적이었으며,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했던 시몬 베드로(게바)

- 시몬 베드로의 형제이며, 세심하게 주변을 살필 줄 알았으며, 많은 사람들을 챙겼던 안드레

진실하지만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완벽주의자 디두모 도마

베다니 출신으로, 늦게 깨닫고 흔들리는 믿음을 가져서 예수님을 의심했던 빌립 

- 갈릴리 가나 출신으로,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에 편견이 가득했던 나다나엘 바돌로매

세베대의 아들이었으며, 야심이 있고 솔직하며, 성격이 불같았던 우뢰의 아들 중의 하나인 야고보

또다른 세베대의 아들이었으며, 야고보의 동생이었고, 복수심과 비판의 정신이 가득했던 우뢰의 아들 요한

- 과하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결점과 장점이 다 확실하게 드러났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 신약성경 유다서를 기록하였으며, 시리아와 페르시아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한 다대오(유다)

-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지 않으셨지만, 스스로 참여했으며, 비열한 마음을 가진 돈을 사랑하는 기회주의자 가룟 유다

  •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이 두고 가르치시려고 부르신 열 두 제자들은 악에 기울어지는 서로 다른 선천적, 후천적 경향을 지닌 결점들을 가진 채로 함께 모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으로 함께 생활하고 믿음과 교훈과 정신에 있어 하나가 되기를 배워야 했다.
  •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들의 연약함과 실수 때문에 그들로부터(배신자 가룟 유다까지도) 돌아서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여 당신의 매일의 신앙의 교훈을 배우기를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열 두 제자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품성의 변화를 얻게 되었으며(가룟 유다 제외), 그리스도의 사도로써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초대교회를 잘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가룟 유다가 죽은 후에, "맛디아"가 새로 열 두 사도 중에 한 명으로 선택됨; 참조-행1:26)

② 제자들 중에서의 베드로의 위치와 그의 성격

  • 당시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사실상 몇 가지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그중에서 몇몇 제자들은 처음에는 조금 다른 이유들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에 합류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깝게 지냈던 최측근은 세베대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 형제였던 안드레와 베드로, 친한 친구였던 빌립과 나다나엘, 그리고 세리 마태 등이었으며, 이들은 다른 다섯 명의 제자들보다 더 예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의 이적도 더 많이 가까이에서 목도했다.
  •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최측근들 중에서도 수제자 베드로제일 처음 순교한 야고보, 그리고 가장 오래살았으며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막내 제자 요한이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도 예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으며, 흔히, "수제자 그룹"이라고 불리는 제자들이었다. 또한, 이 세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겟네마네 동산에서 피땀흘려 기도하실 때, 같이 데리고 가셨던 제자들이었다.

[마태복음 26장 37절]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 예수님의 제자가 된 초기에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스스로 거룩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제자들과 같지” 않다고; 즉, 더 우월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열 두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충성되며, 가장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참조- 눅18:9; 마26:33)

[마태복음 26장 33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마가복음 14장 31절]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또한, 베드로는 사복음서에서 유일하게 결혼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마태,마가,누가복음에 각각 기록되어 있는데(마8:14; 막1:30; 눅4:38), 다수의 성경절들에서 나타나듯이, 베드로는 다혈질이었으며,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며, 또한 그렇게 믿고 행동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성경절들이 있지만, 아래에 몇 가지만 소개한다.

[마태복음 16장 21~23]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도 역시 이 사건을 보고,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막8:32)"라고 기록함으로 베드로의 앞뒤 가리지 않는 급한 성격을 직접적으로 나타냈다.

 

[마가복음 9장 2절,5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마태복음 14장 28~31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③ 베드로의 신앙 상태

  • 예수님의 수제자로 활동을 하던 당시의 베드로의 신앙상태를 단적으로 알게 해주는 성경절이 하나 있다. 어느날, 젊은 부자법관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대답하신 후에,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젊은 부자법관은 자신의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 근심하며 돌아갔고,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대답에 제자들은 크게 놀랐는데, 당시에 유대인들은 돈이 많은 부자들은 당연히 하늘나라에 첫번째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예수님께 다시 질문했고, 그 직후에 베드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예수님께 했다.(참조: 마태복음 19장 16~24절) 

[마태복음 19장 27절]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 사실, 베드로의 이 질문은 당시에 열 두 제자들의 신앙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베드로의 질문 속에 들어 있는 정신은 바로 "삯꾼"(요10:12~13)의 정신이며, 예수님의 제자; 즉, 진실된 청지기의 정신이 아니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려 그분을 따르게 되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당시의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쳤던 잘못된 신앙의 정신; 즉,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외식하는 신앙; 이기주의 신앙; 하나님을 높이는 척 하면서 자신을 높이는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그들의 수고에 합당한 보수를 나중에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예수님 곁에서 일했다. 베드로는 자신을 높이는 정신과 스스로 만족히 여기는 정신을 품고 다른 제자들과 자신을 항상 비교했으며, 이것은 다른 열 한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제자들은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어떤 일에 실패를 하기라도 하면, 다른 제자들은 우월감을 가지곤 했었으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마지막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조차 "누가 크냐"라고 주장하면서 서로 싸웠다.(눅22:24)

●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확인한 베드로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이후에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마태복음 16장 15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나서기를 좋아하는 베드로가 당연히(?) 나서서 대답을 했다.

 

[마태복음 16장 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대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장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제자들을 대표하여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을 주셨고, 이어서 천국 열쇠(믿음)를 주셨다.

 

그렇게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교회의 사명과 천국 열쇠를 받았다.

이 때,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여기면서 우쭐해 했을지, 아니면 겸손하게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했을지는 여러분들 개인의 상상에 맡긴다.

 

그러나, 마태복음 26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행동과 말을 보면, 아마도 전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날 저녁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막 14:27)"고 제자들에게 미리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있게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막 14:29)"라고 말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말뿐인 믿음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게 될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외식(Hypocricy)하는 신앙을 배운 베드로의 자부심(Pride; Egoism)이 그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그 어떤 시험이라도 다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정말 그가 시험을 직면했을 때, 베드로는 저주와 맹세를 하면서 그가 목숨처럼 따른다고 주장하던 구주 예수님을 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부인하였다.

 

베드로는 새벽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예수의 하신 말씀을 기억했으며, 그가 이제 막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하여 놀라움과 충격을 느끼면서 자기의 구주 예수님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도 그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 뒤섞인 서글픈 눈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모습과 눈빛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즉시, 그는 밖으로 뛰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그를 용서와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모습은 베드로의 마음을 통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이 전환점이 되어서, 베드로는 마침내 자기의 믿음을 실체를 깨달았으며,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마치 세리처럼 통회하고 회개하였고 세리처럼 용서를 받았다(눅18:13). 베드로를 사랑으로 바라보신 예수님의 모습은 그에게 용서의 보증이 되었다. 베드로가 그 때까지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던 자부심과 자만심은 사라졌고, 전에 자만스럽게 장담하던 말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침착성이 없고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했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님의 사랑 앞에 굴복시키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으며, 그 경험 이후로 그는 극기와 희생으로써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행동했다. 마침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벧전4:13)"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일으키신 방법: 베드로가 회개한 이유

● 탕자의 변화의 계기와 베드로의 변화의 계기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결과로 회개하며,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탕자의 비유」시리즈의 바로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미 알고 경험하고 있었으며, 도리어 아버지가 자신을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그 사실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용한 천인공노할 망나니였다.

 

하지만, 그러한, 탕자; 곧, 아버지를 배신하고 스스로 아버지 집에서 뛰쳐나온 바로 이 둘째 아들을 그 아버지는 계속 매일 기다렸다.

 

[누가복음 15장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상거 - 헬라어 원어 "ἀπέχω(아페코: 아포+에코)": 금액을 전부 다 받고 영수증을 주다, 멀리있다, 등의 의미

*먼데 - 헬라어 원어 "μακράν(마크란: 시간/장소)": 상당히 떨어진, 멀리서, 먼 장소에서, 오랜 시간동안, 등의 의미

 

위의 성경절에서 사용된 "상거가 먼데"라는 표현의 헬라어 원어를 보면, "금액을 전부 다 받고 영수증을 주다"라는 의미가 포함된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장소 뿐만이 아니라 시간의 의미도 포함된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원어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단어의 사용은 바로 아버지가 자신을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재산의 반을 가지고 떠나버린 이 망나니 둘째 아들의 모든 잘못을 이미 다 용서했음을 명확하게 시사한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 즉, 하나님의 이러한 무한하신 사랑은 예수님께서 새벽 닭이 울기 전까지 자기를 세번씩이나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한 자칭 수제자 베드로를 온전히 용서하신 그 사랑과 동일한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나 참된 변화의 계기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가 아니라자신이 잘못을 그렇게 했는데도 끝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앞에서이다.


● 베드로의 변화의 증거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셨던 사실을 기록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마28:7,10절), 유월절 주일이 끝난 직후에 그들은 갈릴리로 갔다. 절기 동안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유대 지도자들에게 불만을 품은 이단자로 오해받게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그들은 절기가 모두 마칠 때까지 예루살렘에 남아있다가 절기가 끝난 후, 즉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왔다.

 

갈릴리에 모인 제자들은 일곱 명이었는데, 베드로와 도마, 나다나엘과 세베데의 두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또 다른 제자 두 명이 더 있었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한다. 그리고, 베드로의 요청으로 그들은 모두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나갔다.

 

[요한복음 21장 2절]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러나 그들은 어떤 물고기도 잡지 못했는데, 이 때, 바닷가에 서 있던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렸다.

 

[요한복음 21장 4~6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그들은 언젠가 한번 경험했었던 이 익숙한 장면(눅5:1~7)에서 그 사람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보았고, 베드로는 그 즉시 배에서 뛰어내려 바닷가에 서 있는 예수님께로 뛰어갔다.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아침식사를 함께 먹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일부러 세 번 하셨다.

 

[요한복음 21장 15절]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우리는 베드로의 대답을 통하여 베드로의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배울 수 있다.

 

첫째, 베드로는 드디어 예수님의 사랑에 전심으로 반응했다.

  •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것처럼 그에게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줌과 동시에 베드로를 시험하신 것이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는 이제 더이상 자기 형제들이나 다른 제자들보다 자기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그는 겸손해졌으며, 다른 제자들을 자기자신과 비교하지 않았고, 이제는 예수님과 자신, 단 둘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다.

 

둘째, 베드로는 끝내 자아를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 예수님께서는 세 번 똑같은 질문을 베드로에게 하셨고, 베드로도 세 번 다 똑같은 대답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헬라어 동사 "ἀγαπάω(아가페: 무한한 사랑, 초자연적인 사랑, 내리사랑)"를 사용하셔서 질문하셨지만베드로는 세번 모두 "φιλέω(필레오: 친구 사이의 사랑 또는 우정, 스승과 제자 사이의 존경과 사랑)"를 사용해서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 이 사실은 바로 베드로가 이제는 피조물로써의 자신의 사랑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했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더이상 성급하고, 자신만이 최고인줄 아는 제자 베드로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아는 사도 베드로가 된 것이다.

 

셋째, 베드로는 마침내 무엇이 참된 예배인지를 깨달았다.

  •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 자신 사이의 명확한 관계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나 자신의 마음을 일치시키며, 나의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참된 순종의 예배 속에는 이기심이나 자기를 사랑하고 높이려는 마음이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러한 깨달음과 마음의 변화에 대한 대답으로써 "네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심으로써 베드로를 대표로 모든 제자들에게 맡기신 "교회의 사명(마16:18)"을 깨닫게 하셨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사도들을 중심으로 이 세상에 세워질 예수님의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야할 참된 예배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 것이다.

탕자와 베드로의 회개와 깨달음은 똑같은 것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이 매일 경험해야 할 진리이며, 성화의 과정의 필수요소이다.

예수님의 질문의 목적은 베드로를 사도로써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외식하는 신앙과 이기적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신앙인이었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명확하게 알고, 그의 위치를 이해했을 때, 그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과 교회의 사명의 실체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명확하게 알고, 

우리의 위치; 즉,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 속에는 전혀 구원을 이룰 힘이 없고, 오직 예수님께서만 우리의 구원이신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사랑의 사명과 교회에서의 나의 할 일의 실체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매일 그렇게 깨닫게 해주는 바로 그 장소가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To be Continued...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