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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비유 - part 02: 비유의 주제 본문

parables of Jesus [예수님의 비유]

탕자의 비유 - part 02: 비유의 주제

BibleMotivation 2023. 8. 2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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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비유의 가시적인 주제는 "변함없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시작하는 말

지난 「탕자의 비유」 연구의 첫번째 시간에는 왜 예수님께서 천연계(자연)와 인간 사회의 환경과 문화를 이용하셔서 비유로 말씀하셨는지에 관하여 성경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지난 시간의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자연 속에 당신의 사랑을 심어 놓으셨고,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을 그분의 사랑의 원칙에 빗대어 비유로 사용할 수 있으셨다.

 

둘째, 하나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출애굽의 목적인 "참된 예배의 회복"은 아담과 하와가 죄에 빠진 이후로 아벨과 가인의 제사를 통하여 이미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 선과 악의 싸움의 전체 주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첫째 아담의 실패 이후로 잘못된 예배; 즉, 이기심의 제사를 드리는 인류를 위하여 한 백성을 선택하셔서 그 백성의 후손으로 창조주이신 성자 예수님을 직접 이 땅에 보내셔서 둘째 아담으로써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셨고 계획하셨던 인류창조의 목적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사람을 위하여 대신 돌아가심으로써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 그러니까,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창조 당시에 사람에게 주신 안식일과 결혼제도로 드러난 하나님의 생각과 품성,을 십자가에서 모두 온전하게 드러내심으로써 확인하셨고, 증명하셨다.

 

셋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계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자연(천연계), 둘째는 성경책, 그리고 셋째는 예수님 자신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의 모본과 그분께서 베푸신 모든 기적들은 그 자체가 이미 구약에서 예언한 천국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천국 복음의 핵심; 즉,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두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님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위에 언급한 하나님의 세 가지 계시들을 모두 다 가지고 계시며, 또한 그 계시들을 직접 보여주셨고, 그 계시 자체이신 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를 연구하는 성경연구자들은 비유 속에서 세 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께서 창조주로써 인류를 위하여 죄가 없는 천국; 즉, 원래의 에덴동산과 첫째 아담이 실천했었어야 하는 사명을 어떻게 보여주시는가이며, 둘째는 예수님께서 둘째 아담으로써 첫째 아담이 실패한 것들을 어떻게 회복하시는지에 대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비유들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즉, 사람을 위하여 창조해 주신 천연계 속에 하나하나 숨어 있는 하나님의 품성(율법)의 면면을 어떻게 보여주시는가에 대한 것이다.

 

  • 오늘 「탕자의 비유」 연구의 두번째 시간에는 이 비유의 주제를 생각해 보고, 그 주제들 속에 감추어진 성경의 진리가 어떤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볼 예정이다.

 

*누가복음 15장 11절부터 32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탕자의 비유를 먼저 정독하신 이후에 본 성경연구를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탕자의 비유의 주제

① 드러난 전체 주제

  • 이미 드러나 있는대로, 탕자의 비유의 핵심적인 주제; 더 나아가서,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비유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을 떠나 곁길로 나간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동정(Compassion)이 넘치는 사랑(ἀγάπη: 아가페)"이다.
  • 탕자의 비유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 또는, 돌아가야만 하는 단 하나의 길인 것을 보여준다. 또한, 바로 그곳이 바로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곁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과 우리 속의 죄의 돌이킬 수 없는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죄 자체에 대한 심각성을 깨우칠 수 있는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 그 무한하신 사랑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둘째 아담을 표상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계명의 첫번째 부분을 모두 다 실천하셨으며, 또한, 자신이 직접 창조하신 사람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셔서 모든 사람의 죄 값을 대신하여 자기 스스로를 제물삼아 그분의 피를 제단에 드리셔서 계명의 둘째 부분마저도 모두 실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을 사람에게 글로 써주신 십계명을 온전히 완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증명하신 곳이며, 동시에 사람의 죄 문제를 모두 해결한 장소인 것이다.
  •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에게 "죄가 더한 곳"이지만, "은혜가 더욱 넘"친 곳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9~21절]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② 숨겨진 주제 - 01

  • 또한, 탕자의 비유 속에는 숨겨진 또 하나의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 여러 군데에서 주인과 종, 또는 아버지와 아들을 등장시키시며, 종과 아들이 주인과 아버지에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 특히,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와 마태복음 24장의 악한 종의 비유에서도 역시 악하고 미련한 종이 그의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 속에 드러난 탕자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비교된다.
  • 전에도 이 블로그를 통하여 여러 번 언급했지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과 '역사' 및 '복'과 '사명', 그리고 '말씀'과 '언약'의 중심은 창세기 1장 28절에 기록된 죄가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복과 사명", 그리고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사람의 죄 문제에 대한 "언약의 기초(원복음)"에 있다. 즉, 성경의 모든 장과 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모든 말씀과 약속이 바로 이 두 성경절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또한, 전에도 같은 내용을 한 번 이 블로그를 통하여 나누었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과 예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묵시적 예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일반적 예언"이다. 다음의 링크를 따라가면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https://theroadtoemmaus.tistory.com/26)

 

*위의 링크에 나와있는 "두 가지 종류의 예언"에 대한 글의 요점을 짧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첫째, "묵시적 예언"의 특징은 「절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원과 이 세상의 정화(Purification)를 위하여 이미 정하신 기한이 있고, 그 기한대로 모든 것을 움직이신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다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명확하게 성취되기 때문에 절대 인간이나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갈라디아서 4장 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마가복음 1장 14~15절]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3장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따라 정직하고 명확하게 일을 할 일꾼들을 이제 곧 예수님의 재림을 앞둔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 찾고 계신다.

 

[마태복음 24장 45절]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역대상 12장 32절]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요한계시록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 둘째, "일반적 예언"의 특징은 「조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언약과 약속들은 "순종"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그 결과가 양립(Coexist)한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면 복과 쉼이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멸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 "일반적 예언"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 예언"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명령,율법,계명)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으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나누어진다. 그리고, 성경말씀 속에 기록된 예언과 언약, 및 복과 사명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중에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제외하면, 모두 이 일반적 예언의 범주에 속해 있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도 모두 이 "일반적 예언"과 동일하게 "순종"이라는 조건; 즉,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사람이 따르기로 선택하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축복과 심판이 나뉘는 것이다.

 

  • 특히, 탕자의 비유에서 주목해야 할 장면은 누가복음 15장 17절부터 20절에 기록된 "탕자의 독백"이다. 탕자는 자기자신이 정말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 깨달음의 근원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물론, 당시의 탕자는 그가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밑바닥을 보이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의 돌이킴이 그가 비참한 신세를 경험한 결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그의 깨달음과 뉘우침이 오직 그의 물리적인 빈곤상태에서만 기인한 것이라면, 그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려고까지는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탕자의 비유의 숨겨진 첫 번째 주제는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하여 자신의 상태를 깨달은 탕자가 자신의 깨달음을 통하여 나타내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을 향한 자신의 인식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와 마태복음 24장의 악한 종의 비유에서도 역시 악하고 미련한 종이 그의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 속에 드러난 탕자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비교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비유의 또 다른 숨겨진 주제를 엿볼 수 있다.


③ 숨겨진 주제 - 02

  • 탕자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매우 입체적으로 깨달았다. 그에게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어떤 이방 사람의 집에 얹혀 살아야만 했다(눅15:15). 그리고, 그는 할 줄 아는게 없었기 때문에; 또는, 그가 가진 기술들이나 지식들이 이방 나라에서는 쓸모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이 그를 들판으로 보내어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구분하신 돼지를 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눅15:15). 또한, 그에게는 먹을 양식도 없었기 때문에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를 먹어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그에게 주는 사람이 없었다(눅15:16).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탕자의 행동을 표현한 단어들(동사들)이다. 누가복음 15장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모두 탕자의 수동성을 보여주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그는 남에게 "붙어" 살았으며, 그가 붙어 사는 집의 주인이 그를 들판으로 "보내서돼지를 "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으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주는" 사람이 없없다
  • 이러한 단어나 표현의 사용은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의도한 것이 분명하다. 탕자는 자의적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일부 달라고 해서 집을 떠나왔다. 당시의 유대사회의 관습에는 분명히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실 때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즉,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의 재산을 떼어 달라고 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무언의 의미였으며, 또한, 그 아들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해도 할 말이 없는 큰 사건이었던 것이다. 
  • 이 탕자; 즉, 작은 아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나라의 그러한 관습에 따라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 어떤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자신의 모국이 아니라, 다른 이방 나라로 멀리 떠난 것이었다. 멀리 떠나서 살면, 모든 것이 잊혀지고, 그가 자의적으로, 자발성을 가지고, 무언가 그가 하고 싶은 일들을 능동적으로 마음껏 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을 줄로 생각했으며, 그렇게 그는 집을 떠났다.

 

  • 하지만, 이 탕자의 아버지는 그의 둘째 아들이 그렇게 자신을 모욕하고 집을 떠난 사실에 대하여 남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이 아버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막내 아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이 망나니 아들도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절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하게 말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를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시는지를 이 탕자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탕자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대놓고 이용하여 아버지를 죽은 사람 취급하고 재산을 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하고, 배신했으며, 또한 떠났던 아주 배은망덕하고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망나니였다.

 

  •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이번만큼은 그에게도 양심이라는게 있었던 것일까? 이 망나니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동시에 더 이상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로써의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마침내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매우 더럽고 이기적이며 죄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는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을 한 번 경험했으며 또한 알고 있기에,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눅15:19)" 봐 주실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일어나서 아버지 집으로 힘들고 어려운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 여기에, 탕자의 비유의 숨겨진 두번째 주제가 있다. 바로 "참된 회개"이다. 그리고, 참된 회개는 "참된 에배;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이어진다.
  • 이 블로그를 통하여 여러 번 말했지만, "참된 예배"는 곧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을 온 마음과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 그리고, 참된 회개는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오직 성령 하나님의 감화하심과 깨닫게 하심이 있어야지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탕자의 뉘우침과 돌이킴을 통하여 우리는 참된 회개를 배울 수 있다. 그가 회개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를 다시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이키는 결정적인... 그리고 기초적인 계기가 되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탕자는 그가 붙어살던 이방인의 집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복음 15장 17~19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 이제껏 남의 집에서 붙어 살면서, 남이 시키는 것을 하고, 남이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먹지도 못했었으며, 단 한번도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지 못했던 그가... 이제는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스스로 돌이"키게 된 이후로, 그가 죄에 빠져서 살 때와 남의 집에 빌붙어 살 때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 즉,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아버지(하나님)를 선택하는 것"을 회개하고 난 이후에 마침내 행동으로 실천하게 되었던 것이다. 

 

  •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경이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참된 회개"의 정의이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의 죄의 행동의 결과를 두려워해서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죄 자체의 심각성을 처절하게 깨닫고, 그 죄가 나를 창조하신 예수님(하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던 사실에 대하여 마음 속 깊이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는 말

●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일 매순간이 선택의 삶이다.

 

-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시지만, 사탄도 역시 우리의 마음에 이기심에 호소하는 생각을 넣어준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의 선택은 바로 우리의 몫인데,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의 참된 기준점으로 세워져 있지 않으면, 결국 사탄의 편으로 선택하고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속에 분명하게 느껴지며, 우리의 양심과 마음에 호소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 바로 그 때,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자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듣고 감동받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가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수 없다.

 

-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기로 동의하고 선택하는 동시에, 성령의 도움으로 말씀을 실제로 실천해야 한다.

 

- 그러나, 우리가 그냥 성경말씀을 듣고, 마음 속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기로 동의만 한다면, 모든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오실 때에 다 알아서 해주실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마음 속으로 동의한다고 해서, 우리의 품성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 거하실 수 있는 그러한 마음밭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성령을 받을 수 조차 없으며, 우리의 마음밭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도 역시 성령의 단비를 받지 못하여 말라서 죽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그러한 겸손한 마음의 상태를 바로 "자기 부인(Self-Denial); 즉, 자아포기의 상태"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장 24~2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지만, 우리가 의지를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 속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를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자아포기), 절대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이기심에 호소하는 사탄의 생각이 들어올 때, 그 생각을 선택하는 또 다른 나의 자아; 즉, 내 속에 거하는 죄; 또는 다른 말로하면, 죄와 사망의 법(롬8:2)이 있기 때문이다.

 

- 내가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고 한다면, 100% 실패한다. 왜냐하면, 내 속에는 이미 죄와 사망의 법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성경말씀을 잘 알고 있어도, 성경말씀을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과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로마서 7장 14~24절]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그러나, 나의 마음을 재창조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1장 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시편 51편 1~12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 왜냐하면, 그분께서 이미 둘째 아담으로써 이 세상에 오셔서 죄가 없이 승리하셨고, 우리의 죄의 값을 그분의 보혈로 갚으셨고, 또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부활하셔서 지금은 하늘 높은 곳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하늘지성소의 대제사장으로써 우리를 위한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히브리서 12장 2절; 8장 1절; 3장 1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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