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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비유 - part 05 (주변인물① 첫째 아들) 본문

parables of Jesus [예수님의 비유]

탕자의 비유 - part 05 (주변인물① 첫째 아들)

BibleMotivation 2023. 9. 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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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비유에는 탕자의 형이자 아버지의 또다른 아들이 등장하는데, 그는 또다른 부류의 그리스도인을 표상한다.


시작하는 말

지난 「탕자의 비유」 연구 시리즈의 네번째 글에서는 이 비유 속에 나타난 탕자의 회개와 돌이킴이 베드로의 회개, 그리고 그의 고백과 닮아 있는지를 확인하였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변화(품성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함께 알아보았다.

 

● 지난 글의 내용을 잠시 요약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외식하는 신앙; 이기심의 정신)을 배워버렸다. 그래서,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에 이기적인 신앙까지 더해져서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들을 보고도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19:27)"라고 예수님께 질문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인자하신 모습과 사랑을 경험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건이 베드로에게는 입으로 주장만 하는 신앙인에서 직접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환점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하심으로써, 그에게 주어진 교회의 사명을 그리스도의 사도로써 짊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셨으며, 그의 잘못을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단어 “아가페”를 사용하여 사랑을 표현하셨지만 베드로는 단어 ”필레오”를 사용하여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었다. 이를 통하여 베드로는 더이상 말만 앞서는 제자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하나님의 위치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④ 그리고, 베드로의 배신과 용서받음, 그리고 사도로 거듭나는 이 모든 과정은 바로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에 반응하여 다시 아버지의 품을 돌아오게 된 과정과 동일하다.

 

이번 「탕자의 비유」 연구 시리즈의 다섯번째 글에서는 이 비유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그 인물들 중에서 첫번째로 아버지의 첫째 아들; 즉, 탕자의 형에 대하여 자세하게 파악해 보며, 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

탕자의 비유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비유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아버지와 둘째 아들(탕자)이며, 그 이외의 주변 인물들도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먼저, 아버지와 둘째 아들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아버지 집의 인물들과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배경이 되는 이방나라의 인물들로 나뉜다. 그리고 이상 언급한 인물들은 모두 비유 속의 인물들이다. 또한, 비유 바깥의 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데; 즉, 비유를 직접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당시에 이 비유를 듣고 있던 청중들인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및 예수님의 제자들이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이 비유 바깥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의 한 명이 지금 이 비유를 성경책에서 읽는 현재의 그리스도인; 즉, 나 자신이다.


아버지 집의 인물들: 첫째 아들

① 첫째 아들의 등장

  • 첫째 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신실하고, 충성된 아들처럼 보인다. 그는 아버지 곁을 한시라도 떠난 적이 없으며, 아버지께 재산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가 집을 나간 자신의 동생이 돌아왔다는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누가복음 15장 25~27절]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② 탕자(둘째 아들)가 돌아왔다는 "좋은 소식"에 대한 첫째 아들의 반응

  • 아버지의 재산의 반을 가져가서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린 망나니 동생이 몇 년 만에 돌아왔으며, 지금 한창 환영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한 첫째 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 첫째 아들이 지금까지 계속 무슨 생각과 어떤 시각으로 그의 주변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다시 돌아온 동생을 환영하는 잔치에 대한 그의 반응과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그의 말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누가복음 15장 28~30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원어 설명>

▻ 섬겨: "δουλεύω(둘류오/1398)"; "섬기다, 속박되다, 예속되다". 이 단어는 "종, 하인"이라는 헬라어 "δοῦλος(둘로스/1401)"의 동사형태로써, 말 그대로 "노예"가 그 주인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 살림: "βίος(비오스/979)";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단지 9회만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는 "생명", "존재하는 상태", 또는 "생활", "생계수단" 등으로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 첫째 아들의 행동과 말을 보았을 때, 그는 죽은줄 알았던 자신의 망나니 동생이 먼 나라에서 기근으로 고생한 후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오직 지금 현재 보이는 사실; 즉,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저 못된 동생을 위하여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베푸는 것에 대한 분노만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 첫째 아들은 망나니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빠지는 사탄의 유혹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누룩; 즉, 외식하는 신앙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바라보면 안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문제가 생긴다. 다른 사람을 믿을 때 실망을 겪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나와 비교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자신을 예수님과 비교하는 사람이지, 남과 비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믿음의 표준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순간, 베드로처럼 물에 빠지게 된다.(마14:27~31)
  • 그렇다면, 첫째 아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한 첫째아들의 시각은 어떠했을까? 위의 성경절에 기초하여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다.

☑︎ 하나,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주신 일들을 해 나감에 있어서 자신을 "노예", 또는 "종"으로 생각했다. 이 사실은 그가 사용한 "섬겨"라는 동사의 헬라어 원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위의 <원어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첫째 아들이 사용한 단어는 "섬기다, 속박되다, 예속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였으며, 그는 자신을 아버집 집의 종이나 노예로 생각하며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그 말은 바로 주인의식이 없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는 자신 스스로를 겉으로는 아버지의 아들이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종처럼 생각하며 일했다는 것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이 사실은 바로 그가 주어진 자신의 사명을 "삯꾼"처럼 수행했다는 의미이다.(참조-요10:11~16) 그는 아버지의 모든 것이 이미 자신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며, 아버지의 아들로써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질 어떤 물리적인 큰 보상을 바라고 계속 일해온 것이다. 
  • 이러한 첫째 아들의 마음가짐은 곧 창세기에 기록된 이삭의 첫째 아들인 에서(Esau)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받기를 바랬던 장자권에 대한 마음가짐과 동일한 것이며, 이 둘을 비교하여 연구하면 좋을 것이다.(참조 - 창세기 25장 27~34절; 창세기 27장 전체)

☑︎ 둘, 위와 같은 이유로, 이 첫째 아들의 봉사와 아버지께서 주신 일(사명)을 실천하는 것에는 무거운 책임감만 느껴졌고, 그의 봉사에는 기쁨이 전혀 없었다. 즉, 그는 그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체감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겉으로는 아버지의 아들이었지만, 참된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아버지의 진정한 아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자신을 종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살게 되었다. 

  • 또한, 그는 아버지의 아들로써의 진정한 기쁨은 경험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스스로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기준점이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첫째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기쁨이 없었다. 이것은 그가 아버지의 사랑과 명령을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이 사실은 탕자(둘째 아들)의 경험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경험이었다. 아래의 성경절을 비교하여 읽어보면 이 사실이 명확하게 보인다. 
  •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한 이후에 아버지의 재산을 먼 나라에서 모두 탕진하고 어려움에 처하여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깨달았고, 더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써 아버지께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종이 아니라 다시 아버지의 아들로 환영받았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집에 계속 머물렀지만, 스스로를 종으로 생각했으며, 아버지의 아들로써의 가치를 경험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탕자(둘째 아들)의 경험 : 종에서 아들로 복귀함 >

[누가복음 15장 21~24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첫째 아들의 경험 : 아들이지만 스스로 종의 삶을 살아옴 >

[누가복음 15장 21~24절]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 셋, 첫째 아들의 시각은 오로지 물리적인 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눈에는 오로지 "살진 송아지"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잔치", 그리고 자신의 동생이 입고 있는 "좋은 옷"과 "손에 가락지"가 보였다.

  •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서 주어진 사명을 실천하면, 그 이후에, 자신의 땀과 노력의 결과로써 무언가 큰 보상이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담의 첫째 아들이었던 가인의 제사와 같은 의미를 가지며, 곧 이기심의 제사(예배)이다.
  • 그러나, 첫째 아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은 바로 아버지의 아들인 것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며, 가장 높은 영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친아들이라는 의미는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어떤 노동의 댓가나 땀의 결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게 아버지께서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첫째 아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구원도 이것과 같다. 우리는 우리의 땀과 노력으로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 즉, 나같은 죄인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라고 칭해주시는 것(칭의)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때문인 것이다.
  • 사탄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제시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르면 마음도 역시 따라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유혹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마음 속에 십자가를 통한 은혜의 왕국이 건설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이었다.(*천국복음+십자가)

 

[마태복음 3장 2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4장 23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누가복음 4장 18~19절,21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3장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첫째 아들을 통한 교훈

① 하나님의 율법(=사랑)이 갑갑하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탕자와 하나님의 율법 속에 머물면서도 그 속에 감추어진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던 첫째 아들

  • 그리스도인들은 가끔씩 하나님의 율법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십계명은 지킬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어떻해서든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인간의 시각으로 해석하여 구원을 좀 더 쉬운 것으로; 또는 값싼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잘못된 것이며, 결국에는 성경이 기록하시는 진리를 오류가 섞인 해석으로 뒤바꾸는 역할을 하게 된다.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 모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을 인간의 머리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서 주신 기준점이며, 예수님의 모든 생애와 말씀, 그리고 병고침과 기적들 및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려 돌아가신 것은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을 실천하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 하나님의 율법은 그 율법을 따르고 지키는 사람을 죄로부터 보호하지만, 그 율법을 무시하고 잘못 해석하며 율법을 벗어나서 율법 밖에 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심판한다.(참조-마24:37; 노아방주와 언약궤가 의미하는 것은 똑같이 "하나님의 율법"이다.)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② 첫째 아들의 반응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은 현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잃어버린 영혼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누가복음 15장 31~32절]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생각해 보면, 잃어버린 영혼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은 바로 잃어버린 한 사람의 영혼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5장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그런데 문제는, 나 자신이 독생자 예수님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구원받은 진실된 경험을 가지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의 구원에도 역시 별다른 감흥이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 첫째 아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동생은 그저 아버지의 재산의 반을 훔쳐서 집을 나간 도둑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또한, 그 자신이 스스로를 아버지의 첫째 아들이 아닌 종으로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된 기쁨이 없었다.
  •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탕자의 비유에서 첫째 아들을 통하여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 탕자의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한 말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것들이 다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한다(눅15:31~32).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며, 기쁘게 생각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도 그것을 가장 소중하고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말은 곧 책임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사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즉, 둘째 아들이 탕자가 되어서 아버지의 아들된 도리와 책임, 또한 사명에서 멀어졌을 때, 첫째 아들은 그러한 자신의 동생을 돌보고 챙겨야 할 책임이 당연히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첫째 아들은 그 사명을 무시했으며, 그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첫째 아들은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으면서도 오히려 탕자인 둘째 아들보다도 더 신앙적으로 무심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며 계산하는 오늘날 교회 안의 수많은 가짜 그리스도인들을 표상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혹시나 나도 그렇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 첫째 아들이 가진 잘못된 믿음과 신앙의 이유와 결과는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첫째 비유인 열 처녀의 비유와 마지막 비유인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또한, 아버지는 첫째 아들에게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15:32)"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위에 옮겨 적은대로 사도바울이 기록한 데살로니가서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즉, 기뻐하는 것은 나 자신의 구원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인한 기쁨이며, 그것에 뒤따르는 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쁨이 곧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 그리고, 자신의 구원을 깨닫고 매사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을 예수님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 또한, 이러한 참된 기뻐함과 감사함 사이에는 기도가 그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자신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에서 떠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이 주는 한시적이고 한정적인 기쁨을 거부하게 되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함을 계속 경험하기 위하여 결국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힘을 얻을 수 있게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 또한, 기도를 통해서만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포함하여 참된 기쁨과 평안함 같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모든 좋은 것들(참조-벧전1:12; 고후5:2; 약1:17)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 그리고, "항.쉬.범."의 바로 다음 구절에서 사도바울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24절]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의 비유를 하나 더 말씀하셨는데, 이 비유는 마태복음 21장 28절부터 31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 비유에서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으며, 탕자의 비유에서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말과 행동과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음 21장 28~31절]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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